절망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도 오고
구원救援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오고
절망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은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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