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숲
폴 발레리 지음, 최성웅 옮김

우리는 순수한 것들을 생각했다
나란히, 길들을 따라가며,
우리는 손과 손을 마주 잡았다
말없이… 희미한 꽃들 사이에서

혼인을 약속한 사이처럼 걸었다
둘이서, 초원의 푸르른 밤 속을
우리는 꿈의 열매를 나누고 있었다
분별 잃은 자들에게 정다운 달을

이어, 우리는 이끼 위에 스러졌다
아주 멀리, 다정한 그늘 속에서
단둘이, 친밀하게 속삭이는 숲에서

그리고 저 높이, 가없는 빛 속에서,
우리는 울고 있는 우리를 깨달았다
오, 내 소중한 침묵의 친구여!



어떤 머리말에 부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박술 옮김

이 책은 그것이 쓰여진 정신을 친구와 같은 자세로 받아들이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정신은, 유럽과 미국 문명의 거대한 조류와는 다른 정신이다. 우리 시대의 산업과 건축, 음악, 전체주의와 사회주의에 표현되어 있는 그런 정신은 이 책의 저자에게 낯설고,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

내가 서구의 전형적인 과학자들로부터 이해받거나 높이 평가되는지의 여부에 나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내가 글을 쓰는 정신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명은 진보라는 말로 특정될 수 있다. 하지만 진보는 그 형식일 뿐, 이 문명이 진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축적蓄積은 이 문명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계속해서 점점 더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전형적인 행위이다. 명료함마저도 이 목적에 이용될 뿐, 그 스스로 목적이 되지는 못한다. 내게 있어서는 명료함이, 투명함이, 그 자신을 목적으로 지닌다.

나는 건물을 짓는 일에 관심이 없다 – 모든 상상가능한 건물들의 기반을 내 눈 앞에 투명하게 보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추구하는 목적은 과학자들의 그것과 다르며, 내 사유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장소가 사다리를 타고서만 이를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나는 거기에 도달하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로 이르러야 하는 곳이 있다면, 나는 이미 그 곳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다리를 타야만 이룰 수 있는 일들에 나는 관심이 없다.

어떤 움직임은 사고를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어떤 움직임은 매번 같은 영역에 다다르려 노력한다. 어떤 움직임은 집짓는 일처럼 돌덩어리들을 차례로 집어올리고, 어떤 움직임은 항상 같은 돌에만 손을 뻗친다. […]

내 책이 유럽과 미국의 ‘발전하는’ 문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정신이 필요로 하는 환경이 바로 그 문명일 수도 있겠지만, 추구하는 목적은 다르다.

의식적儀式的인 (말하자면 대제사장적인) 모든 것은 철저히 기피되어야 한다. 이는 즉시 부패하기 때문이다.

입맞춤도 의식의 하나이되 부패하지 않는다. 입맞춤이 진정한만큼, 바로 그만큼의 의식만이 허용된다.

정신을 풀어쓰고자 하는 일은 커다란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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