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본명 나쓰메 긴노스케. 1867년, 도쿄 신주쿠구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마쓰야마와 구마모토에서 교편을 잡았다. 1900년, 문부성으로부터 2년간의 영국 유학을 명받고 유학길에 오르나, 영문학에 대한 회의감과 고독감으로 극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렸다. 귀국 후 생계에 대한 압박으로 신경 쇠약이 악화되던 중 기분 전환을 위해 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가 뜻밖의 큰 인기를 얻으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도련님》(1906), 《풀베개》(1906)를 연이어 발표하며 단숨에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1907년, 마흔의 나이에 교직을 떠나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하여 전업 작가로 집필에 매진하게 된다. 《그 후》(1909), 《문》(1910), 《마음》(1914) 등의 작품을 인기리에 연재하며 승승장구하지만, 거듭 재발하는 위병과 신경 쇠약으로 몸져눕는 일이 많았다. 결국 《명암》을 연재 중이던 1916년, 위궤양 악화로 대량 출혈 후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12월 9일 오후, 가족과 친구,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유작이 된 《명암》은 미완 상태로 188회에서 연재가 중단되었다.


노발리스(Novalis)

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Friedrich von Hardenberg)로서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철학자다. 1772년에 북독의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실러, 슐레겔 형제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 철학적 활동을 시작했다. 슐레겔 형제가 간행한 문예지 《아테네움》에 〈꽃가루〉를 발표하며 1798년에 문단에 등장했다. 이어 같은 해 〈신앙과 사랑〉을, 1800년에는 〈밤의 찬가〉를 발표했다. 1801년에 지병인 폐결핵으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리하여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소설 《푸른 꽃》을 비롯하여 그가 생전에 계획하고 집필한 방대한 양의 철학적, 문학적 텍스트는 유고로 남았다. 그가 남긴 글은 수많은 세대에 걸쳐 예술, 문학, 철학 등 폭넓은 분야에 지대한 영감을 주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년 독일 뢰켄에서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스승 리츨의 추천으로 25세에 바젤 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쇼펜하우어 철학과 바그너 음악에 경도되어 《비극의 탄생》(1872), 《반시대적 고찰》(1873~76)을 집필하면서 철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바그너와의 결별 이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9~80), 《서광》(1881)을 통해 독자적 사유를 모색하였으며, 1881년 실스 마리아에서의 체험 이후 《즐거운 학문》(188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85), 《선악 너머》(1886), 《도덕의 계보》(1887), 《적그리스도》(1888), 《이 사람을 보라》(1889), 《우상의 황혼》(1889) 등의 저작을 쏟아내면서 인간의 문명과 심리를 파훼한 철학자로 우뚝 섰다. 1889년 정신적 붕괴를 맞고 병상에서 지내다 1900년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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