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Марина Ивановна Цветаева)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첫 시집 《저녁의 앨범》(1910)을 발표했다. 어떤 동인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창작의 길을 걷던 중 혁명이 일어나자 1922년 딸과 함께 프라하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콘스탄틴 로드제비치와 사랑에 빠져 포에마 〈끝의 시〉를 썼다. 1925년에는 파리로 이주했고, 1926년에는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셋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러시아로 돌아온 뒤에는 남편과 딸의 체포, 소비에트 문단으로부터의 고립, 극도의 궁핍 등으로 힘든 삶을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타타르스탄의 옐라부가로 피난했다가 1941년 8월 31일 목을 매 자살했다. 대표작으로는 시집 《수공업》(1923), 《러시아를 떠나》(1928), 포에마 〈쥐잡이〉(1925) 등이 있다.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미야자와 겐지는 1896년 헌옷가게와 전당포를 운영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21세에는 문학 동인지를 창간하여 동화를 발표했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전당포에는 가난한 농민들이 가재도구를 가져다 팔았고, 어려서부터 겐지는 그런 농민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일본의 전통시 단가(短歌)를 짓기 시작했으며, 모리오카고등농림학교 농학과에 입학한 뒤부터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많은 동화와 시를 썼으며, 농업에 관한 연구논문도 다수 발표했다. 고향인 이와테 현에서 농민들과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농업에 뛰어들었고, 농업 강의와 벼농사 지도 등 농민 운동을 펼치며 농업학교 교사로 일했다. 그 와중에도 시, 동화 등을 집필하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다.

〈은하철도의 밤〉, 〈주문이 많은 요리점〉, 〈바람의 마타사부로〉, 〈봄과 아수라〉, 〈비에도 지지 않고〉 등 100여 편의 동화와 시를 썼다. 생명 존중 사상을 담은 겐지의 작품은 당시 일본에서는 외면당했고, 그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늑막염으로 생을 마쳤다.


미즈노 루리코(水野るり子)

미즈노 루리코는 1932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다. 1964년 직장을 그만두고 지인들과 모임을 만들어 르네 기요의 《흰 말》 등 동화 번역을 시작한다. 1974년 샹송 콘서트 《동물도감》의 작사를 맡았으며, 1977년 첫 시집 《동물도감》을 출간했다. 1983년 두 번째 시집 《헨젤과 그레텔의 섬》을 발표, 이듬해 이 시집으로 H씨 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라푼젤의 말》, 《개암나무색 눈의 여동생》, 《고래의 귀이개》, 《유니콘이 오는 밤에》 등이 있으며, 내재하는 판타지의 세계를 시의 언어로 엮어내는 시인의 독특한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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