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와 치카(左川ちか)

본명 가와사키 아이川崎愛. 1911년 2월 14일 홋카이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 요이치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손에 자랐으며 아버지의 얼굴은 알지 못했다. 오타루고등여학교 졸업 후 같은 학교 사범부에 진학하여 영어교원자격을 취득, 이후 오빠 노보루와 작가 이토 세이를 따라 도쿄로 나오며 당대 모더니즘 시인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19세에 처음으로 발표한 시 두 편 〈푸른 말〉과 〈곤충〉이 문단의 주목을 받으면서 다양한 지면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동시에 영미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여 버지니아 울프, 미나 로이, 존 치버 등의 글을 번역했다. 21세에 출간한 제임스 조이스의 번역 시집 《실내악室樂》은 그녀가 살아생전 발표한 단 한 권의 단행본이다. 시인 기타조노 가쓰에와 ‘아르쾨유 클럽Arcueil Club’을 결성하는 등 촉망받는 모더니즘 시인으로 도약하다가 24세에 위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이듬해인 1936년 1월 1일 시 〈계절〉을 끝으로 1월 7일 “모두 사이좋게 지내요. 고마웠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해 11월 이토 세이의 편집으로 《사가와 치카 시집左川ちか時集》이 출간되었다.


루이페르디낭 셀린(Louis-Ferdinand Céline)

본명 루이페르디낭 데투슈(Louis-Ferdinand Destouches). 1894년 5월 27일 파리 교외의 쿠르브부아에서 태어났다. 1932년 어머니의 성에서 따온 셀린이라는 필명으로 민족주의와 식민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는 소설 《밤 끝으로의 여행》을 발표하고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1936년 자본주의를 공격한 두 번째 소설 《외상 죽음》을 발표하고, 같은 해 러시아 여행을 다녀와 공산주의 체제를 낱낱이 비판한 정치 팸플릿 《내 탓이오》를 발표했다. 이후 반유대주의를 공공연히 표명한 탓에 문단과 강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프랑스가 해방된 뒤에는 대독 부역자로 단죄를 받아 덴마크 감옥에 수감되었다. 형기를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와 집필을 계속하며 소설 《Y 교수와의 대담》, 《이 성에서 저 성으로》 등을 발표했다. 자신이 마주한 모든 주의에 대해 비판을 이어나갔으며, 마지막 작품 《리고동》을 탈고하고 1961년 7월 1일 사망했다.


피터 스타인(Peter Stein)

애버딘 대학교 법학 교수 및 케임브리지 대학교 로마법 왕립 교수(Regius Professor of Civil Law)를 지냈다. 칙선 변호사(Queen’s Counsel)이자 영국 학술원 회원이었다. 지은 책으로 《법의 규칙들 : 법률 규칙에서 법률 격언으로(Regulae iuris: From Juristic Rules to Legal Maxims)》(1966), 《법의 진화(Legal Evolution)》(1980), 《법제도의 역사(Legal Institutions)》(198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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