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미쇼(Henri Michaux)

1899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955년 프랑스로 귀화 후 1984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파리에서 살았다. 1922년 《주기적 광증의 사례》를 비롯한 첫 작품들을 벨기에에서 발표한 이후, 1927년 첫 단행본 《나는 누구였는가》를 프랑스에서 출간하면서 문학인의 삶을 시작한다. 1929년 《에콰도르》와 1933년 《아시아로 간 야만인》을 발표하여 특별한 문학적 위상을 구축한다. 《위대한 가라반으로의 여행》, 《내면의 먼 곳을 뒤따르는 플륌》, 《마술의 나라에서》, 《안의 공간》, 《시련, 구마》, 《접힘 속의 인생》, 《통로들》, 《움직임》, 《잠든 자의 방식, 깨어난 자의 방식》, 《불행한 기적》, 《난간의 기둥》 등 많은 작품을 남겨 동시대와 후대 문학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1937년 첫 미술 작품 전시회를 여는 등 예술가로서도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에드몽 자베스(Edmond Jabès)

1912년 4월 1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탈리아 국적을 갖고 프랑스어권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문학에 뜻을 두었으며, 1929년 출판사 ‘모래의 몫’을 설립하여 문학작품을 간행하였다. 1930년부터 프랑스 시인 막스 자코브와 서신을 교류하였고, 1935년에 프랑스를 방문해 폴 엘뤼아르 등 프랑스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시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제2차 중동전쟁 발발 후 1957년 나세르 정권의 반유대주의 정책으로 인해 이집트를 떠나 프랑스에 정착하였는데, 이 사건 이후 자베스의 내면에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자리 잡았다. 망명 시인, 유배지 시인으로 시집 《거처를 짓다》를 시작으로 프랑스에서 평생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 196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같은 해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에서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4대 프랑스 작가로 선정되는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파울 첼란, 모리스 블랑쇼, 에마뉘엘 레비나스, 이브 본푸아, 르네 샤르 등과 가까이 지냈던 그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파울 첼란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대계 시인으로, 폴 오스터 등 많은 작가가 자베스를 자신의 문학적 모범으로 손꼽았다. 르네 샤르가 말했듯 ‘당대의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작품’의 시인인 에드몽 자베스는, 1991년 이국 프랑스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학업을 그만두고 인쇄소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이후로는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교사가 되었으며, 5년간 학교에서 일한 뒤 언론사에서 활동하며 시와 소설을 썼다. 1841년 《프랭클린 에반스》, 1842년 《한 아이의 챔피언》 등 소설을 발표하며 《뉴욕 오로라》의 편집자로 일하던 시기에 랠프 월도 에머슨의 ‘자연과 시인의 능력’이라는 강연에 감명받아 자유시 형식의 시 쓰기에 전념한다. 1855년 7월, 제목 없는 열두 편의 시를 실은 《풀잎》 초판을 자비로 출판했는데, 에머슨이 이 시집을 극찬하여 시인으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휘트먼은 《풀잎》을 생명력과 민주주의에 대한 찬양을 담은 ‘아담의 아이들’, ‘창포’, 남북 전쟁의 경험을 담은 ‘북소리’, 해변과 바다의 시들을 담은 ‘해류’ 등의 여러 ‘덩어리cluster’로 나누며 ‘임종판deathbed edition’이라 불리는 1891~1892년 판본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쳐 수정과 증보를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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