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루이-페르디낭 셀린
  • 옮긴이 이주환
  • 원제 Entretiens avec le professeur Y(1955)
  • 발행일 2016년 3월 24일
  • 판형 125×200mm
  • 면수 172쪽
  • 정가 11,500원
  • ISBN 9791195735136
  • 전자책 출간(ePub)

책 소개

셀린의, 셀린에 의한, 셀린을 위한
‘주우우우욱이는’ 소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우리가 뭘 배웁니까? 서로 닮는 법을, 그러고서는 서로 베끼는 법을 배우잖아요… 공쿠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모든 작가들은 서로 베껴댑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읻다 프로젝트의 총서 ‘괄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인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소설 《Y 교수와의 대담》이 출간됐다. 루이-페르디낭 셀린이라는 이름의 우리에겐 낯선 이 작가의 책이 ‘읻다’의 이름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앞서 출간된 몇 권의 책이 존재한다. 동명의 책 또한 간발의 차이로 출간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이-페르디낭 셀린은 이름만 낯설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알베르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와 어깨를 견주는, 현재까지도 꾸준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20세기 프랑스 작가 중 하나이며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당시 프랑스 문단에 큰 충격을 준 작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루이-페르디낭 셀린을 처음 들어본다고 해서 자신의 독서 이력을 탓할 필요는 없다. 공공연히 표명된 그의 반유대주의는 그를 문단과 강단으로부터 철저하게 고립시켰고, 독자로부터도 멀어지게 했으며, 그 이후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으니 당신이 셀린의 이름을 듣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평생 읽지 않아도 되지만 알아두면 좋은 책, 다시 번역되었으면 하는 고전이나 꼭 읽어볼 필요가 있지만 발견되지 못한 책을 내고자 하는 읻다의 ‘괄호’ 시리즈 첫 세 권에 《Y 교수와의 대담》이 포함된 것은 그럼 무엇 때문인가? 간단하다. ‘주우우우욱이는’ 소설이니까. 《Y 교수와의 대담》은 정말 ‘주우우우욱이는’ 소설이다. 《Y 교수와의 대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루이-페르디낭 셀린 그 자신이기도 한 화자는 한 공원에서 자신의 인터뷰어인 Y 교수 즉 레제다 대령을 만난다. 그리고 둘은 갈리마르의 집까지 가는 내내 이야기를 나눈다. 끝이다. 정말 이게 줄거리의 다냐고 되묻고 싶겠지만 이게 다다.

소설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속 두 주인공의 대화처럼도 보인다. 기괴하고, 엉뚱하고, 반쯤 미친 것 같게도 보인다. 하지만, 《Y 교수와의 대담》은 〈고도를 기다리며〉와는 완전히 다르다. 《Y 교수와의 대담》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현실적이어서 더 기괴한 소설이다. 고도를 기다리는 대신, 갈리마르를 찾아 나서니까.

루이-페르디낭 셀린이 《Y 교수와의 대담》을 집필한 시기는 그가 덴마크에서의 형기를 마치고 막 프랑스로 돌아온 직후였다. 그리고 그 당시 셀린은 소설가로서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소설가로서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그 당시 셀린에겐 그저 일종의 홍보용으로 기획한 책이 필요했다. 자신이 자신을 인터뷰하는 소설이 필요했다. 《Y 교수와의 대담》을 셀린이 셀린을 쥐고 셀린을 써 내려간 소설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셀린의, 셀린에 의한, 셀린을 위한 소설 말이다.

교실에서의, 수업 시간에서의 평가와 상관없이 《Y 교수와의 대담》은 셀린에게도, 우리에게도, 현대 소설에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어떤 게 중요하냐고? 점 세 개가 중요하다. 점 세 개를 쓸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 나를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그 태도가 중요하다. 《Y 교수와의 대담》을 셀린의 미학이 담긴 작품이라고 포장하고 싶진 않다. 미학 같은 건 수업 시간에나 배우는 거니까. 교실이나 수업 시간에서 셀린이란 이름을 들었다면 부디 이 소설을 통해 다시 셀린을 만나길 바란다. 셀린이 되어 Y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

1950년대에 행해진 어느 라디오 인터뷰에서 셀린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글을 썼을 뿐이오.” 가히 요즘 작가들이 본받을 만하지 않을까? ‘읻다’가 펴내는 ‘괄호’ 시리즈의 어떤 거창한 사명이 붙는지와 상관없이 셀린이 되어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우리는 사무실을 장만하기 위해 이 책을 냈을 뿐이오.”
이건 그 정도로 중요한 글이 아니지만 그렇고 그런 소설보다는 중요한 글이다.

“당신 얘기대로라면, 이제 소설가에게는 무엇이 남은 건가요?”
“정신박약자들이요… 축 늘어진 사람들 있잖아요… 신문도 안 읽고, 영화관에도 거의 안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졸작’ 소설은 읽는다고요…?”
“물론이죠!… 특히, 자기들 서재에 틀어박혀서!… 거기서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겁니다!… 가지려고 갖는 시간은 아니지만!…”

컴퓨터가 바둑을 두고,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시대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에게 남은 건 뭔가요? 수십 년 전 셀린 또한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한다. 간단한 답이다. 사람들이라고. 사람들이 남았다고. 사람들이 남은 거다, 라고. 거짓말 같겠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소설을 읽는다. 신문도 안 읽고, 영화관에도 거의 안 간다고 해도 소설을 기다리고, 소설을 쓰다듬는 손길은 여전히 존재한다. 공쿠르상을 받지 않았어도 읽지만, “그럴듯한 정치적 과거가 있고, 좋은 편집자가 붙고, 할머니가 둘, 셋 있고, 유럽 어딘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거나 “공쿠르상”을 받은 작품이라면 더 잘 읽는다. 옆에서 오! 셀린! 위대한 작가! 이렇게 부추겨주면 더 잘 읽는다.

하지만, 소설가에게 남은 게 아무래도 사람들 같지는 않다. 셀린은 사람들을 택하기보다는 점 세 개를 택했다. 스타일을, 기교를, 천재를, 스스로를 택했다. “점 세 개 찍는 대신에, 적당한 단어들로 바꿔 채울 수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셀린은 “당신, 반 고흐가 성당들을 찌그러지게 그렸다고 해서 비난한 적 있습니까?”, “드뷔시가 박자 무시했다고 비난한 적 있어요?” 하고 따져 묻는다. 소설가로서 “문장을 끝내는 법을 모른”다는 말을 들어도 결코 점 세 개를 포기하지 않는다. “무슨 무슨 풍으로 헉헉거리며 써 내려가는”, “서로 닮았고, 지루하고, 엇비슷한 소설”을 쓰느니 점 세 개를 택한 거다.

점 세 개가 뭐기에? 그게 얼마나 대단해서? 옮긴이 이주환은 말한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란 쓰고 싶어서, 또는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일에 가깝다”, “두려움을 글쓰기로 버텨낸 인간”이 셀린이다, 라고. 당신이 셀린을 알고 싶다면, 소설을 읽거나 쓰고 싶다면, 그저 누군가와 같이 걷고 싶다면, 그러니까 어떤 용기를 얻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 된다. 이건 그 정도로 중요한 글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고 그런 소설보다는 중요한 글이니까 말이다. 《Y 교수와의 대담》 곁에서 속는 셈 치고 잠시만 있자. 우리처럼. 그러니까, ‘읻다’처럼.


차례

Y 교수와의 대담 7
옮긴이의 말 164


책 속에서

실상은, 그러니까, 아주 간단히 말해, 출판사가 매우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출판 부수가 1,000,000권이네 40,000권이네 하는 얘기에서 단 하나의 ‘0’ 자도 믿지 마세요! 아니 400권 찍었다는 말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사기예요! 저런… 저런! 오직 〈프레스 뒤 쾨르〉 정도가… 쳇!… 그 정도가 그럭저럭 팔리고… 그 외에는 〈세리 누아르〉, 〈세리 블렘므〉 정도가 근근이 팔리지요… 사실, 더는 책 한 권이 안 팔립니다… 이건 심각한 상황이에요!

7쪽

선생들이 하나같이 무슨 무슨 “풍으로” 헉헉거리며 써 내려가는 걸 보는 게 참 애처롭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 베끼는 거예요… 그분들은 수업에 너무 자주 들어갔어요… 수업에 들어가 있는 것이 그들 직업이죠… 그런데 수업 시간에 우리가 뭘 배웁니까? 서로 닮는 법을, 그러고서는 서로 베끼는 법을 배우잖아요… 공쿠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모든 작가들은 서로 베껴댑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들의 작품은, 이런저런 미술전이 있을 때마다 우르르 출품되는 그림들과 꼭 닮은 꼴로, 정체되었고, 서로 닮았고, 지루하고, 엇비슷합니다… 미술전 금상작이나, 공쿠르 수상작이나, 한쪽은 엉성한 그림이고 다른 쪽은 막 휘갈긴 잡소린데도… 그게 사람들을 퍽 행복케 한다지요! 그래서 Y는 그 벤치에 앉아, 내 곁에서, 자기 거지 같은 원고로, 금상을, “공쿠르”를 받을 생각에 푹 빠져 있던 것이죠! ‘가스통이 한 번만 눈길을 던져준다면, 가스통이 한마디만 건네준다면!’

18쪽

내게는 관념이라는 게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내 생각에, 관념이란 것보다 더 천박하고, 진부하고, 역겨운 것도 없습니다! 도서관마다, 그리고 카페테라스마다, 관념들로 꽉 차 있어요!… 무력한 사람들이… 그리고 철학자들이!… 관념을 곱씹어대지요… 관념이란 거… 그게 그들의 산업입니다!… 그들은 관념을 갖고 젊은이들에게 허세를 부리지요! 그들은 젊은이들의 포주 노릇을 하려 들어요!… 젊은이들은, 아시다시피 뭐든 마구 삼킬 준비가 되어 있으며… 무엇을 보더라도 이거 “주우우욱이는데!”를 외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철학자들이 젊은이들을 창녀처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용이하겠어요! 정열 어린 청춘기가 저 “관녀어엄”들 앞에서, 그리고 더 정확하게 짚자면 ‘철학’ 앞에서 흥분하느라, 열광하느라 바쳐지는 것입니다 선생님!… (중략) 그들은 내달리고, 짖어대다가, 자기 시간을 잃고 말지요, 이것이 요점입니다!… 이제, 젊은이들과 놀아주는 데 여념이 없는 저 모든 삼류 작가들을 봐보세요… 그들이 끊임없이 젊은이들에게, 속이 텅 빈, 그리고 ‘철학적’인 가짜 뼈다귀들을 던져주는 모습을… 아, 청년들이 목이 쉬어라 짖어대는 모습을!… 얼마나 만족해합니까! 얼마나 감사해합니까!… 그들은, 포주들은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어요! 관념들!… 더 많은 관념들! 결론을! 지적 변화를! 포르투갈 포도주에 절여서! 언제나! 논리적이고! 주우우우욱이는, 포르투갈 포도주에 담가서!… 젊은이들은 속 빈 강정일수록 더 넙죽넙죽 삼키고, 먹어치우죠! 그들이 저 가짜 뼈다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과아아안념이라는 장난감뿐이거늘!…

20쪽

문학상을 받은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다 개똥 같은 것들이라고 일축하시렵니까?…” “아뇨! 높이 삽니다! 진심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졸작”으로서 말입니다!… 팔십 년은 뒤처진 인간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집필에 매달리는 모습은, 하나같이, 아카데미 미술전에 금메달 따려고 달려들던, 1862년의 사람들 같더란 말입니다… 아카데미풍이든, 살짝 “벗어난” 풍이든, 아예 반–아카데미풍이든,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골고루 다 필요하죠!… 다만 졸작이면 되는 거예요!… 아나키스트 졸작!… 과장이 심한 졸작!… 빌어먹을 놈의 졸작!… 졸작…!”

27쪽

“당신 얘기대로라면, 이제 소설가에게는 무엇이 남은 건가요?” “정신박약자들이요… 축 늘어진 사람들 있잖아요… 신문도 안 읽고, 영화관에도 거의 안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졸작’ 소설은 읽는다고요…?” “물론이죠!… 특히, 자기들 서재에 틀어박혀서!… 거기서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겁니다!… 가지려고 갖는 시간은 아니지만!…” “그런 독자들이 얼마나 있나요?” “아! 백 명 기준으로 칠십… 팔십 명은 될 겁니다.”

27쪽

“받아 적으세요!… 우리 무신론자 유럽인들은, 전쟁과 술, 고혈압과 암 없이는, 권태로 죽어버릴 거라고!” “그럼 다른 지역은 어떤데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말라리아가 있습니다, 아메리카에는 히스테리가 있고, 아시아인들은 모두 굶주리고 있지요… 러시아인들에게는, 강박증이 있습니다! 이들처럼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권태가 영향력을 가질 수 없지요!” “제기랄! 미친 소리를!”

42쪽

“좋습니다!… 말줄임표! 말줄임표 갖고 사람들이 하도 날 욕해서, 이젠 으레 그들이 내 “점 세 개”에 대해 이렇게 주절거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 셀린 씨의 점 세 개!… 아, 그 말줄임표! 그는 문장을 끝내는 법을 몰라!…” 상상할 수 있는 갖은 개소리가 다 나오죠! 몽땅 헛소리입니다, 대령!”

121쪽

“당신이 막대기 하나를 물속에 담근다고 해보세요…” “막대기 하나를, 물속에요?” “그래요, 대령! 당신의 그 막대기가 어떻게 보일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부러진 것처럼 보일 겁니다! 멍청이 같으니!” “그래서요? 그런데요?” “그러니까 당신 스스로, 그 막대기를 분지르란 말입니다, 당연한 얘기예요! 그 막대기를 물속에 담그기 전에! 그 짓궂은 장난질! 그것이 바로 인상주의의 비결이랍니다!”

130쪽

지은이 | 루이–페르디낭 셀린(Louis-Ferdinand Céline)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알베르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와 더불어 현재까지도 꾸준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20세기 프랑스 작가 중 하나다.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당시 프랑스 문단에 큰 충격을 준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를 공공연히 표명한 탓에 2차세계대전 후에는 문단과 강단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기도 했다.
셀린은 1894년 5월 27일 파리 교외의 쿠르브부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루이-페르디낭 데투슈(Louis Ferdinand Destouches)이다. 1932년 어머니의 성에서 따온 셀린이란 필명으로 민족주의와 식민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는 소설 《밤 끝으로의 여행》을 발표한다. 이 소설로 르노도상을 수상한다. 1936년 자본주의를 공격한 두 번째 소설 《외상 죽음》을 발표하고 같은 해 러시아 여행을 다녀와 공산주의 체제를 낱낱이 비판한 《내 탓이오(Mea Culpa)》를 발표한다. 프랑스가 해방된 뒤 대독 부역자로 단죄를 받아 덴마크에서 감옥에 갇힌다. 형기를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와 집필을 계속하는데 이때 《Y 교수와의 대담》, 《이 선에서 저 선으로》 등을 발표한다. 자신이 마주한 모든 주의에 대해 비판을 이어나가던 셀린은 마지막 작품 《리고동》을 탈고하고 1961년 7월 1일 사망한다.


옮긴이 | 이주환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동 대학원에서 논문 〈셀린(Céline)의 《밤 끝으로의 여행(Voyage au bout de la nuit)》 연구: 죽음의 언어와 주체성의 탐색〉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간기(戰間期) 문학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공군사관학교 프랑스어 교관을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 《Y교수와의 대담》 《자유 또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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