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옮긴이 최성웅
  • 원제   Duineser Elegien
  • 발행일 2016년 5월 27일
  • 판형 125×200mm
  • 면수 136쪽
  • 정가 11,500원
  • ISBN 9791195735143
  • 전자책 출간(ePub)

책 소개

죽음 곁에서 끝내 사랑을 부르다
릴케 시집, 《두이노 비가》

1.
‘읻다’ 괄호 시리즈 네 번째 책.
전 세계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만년의 대작 《두이노 비가》.
1912년 이탈리아의 두이노 성에서 집필을 시작해 1922년 스위스의 뮈조트 성에서 완성.
‘비가’는 희랍어로 ‘죽음의 노래’라는 뜻.
집필 순서와 비가의 순서는 다름.
옮긴이 최성웅은 이렇게 묻는다: “무엇이 열 번 죽어야 비로소 가능할까?”
그 답을 찾는 것, 기어코 시 안에서만 찾는 것, 하지만 대답을 구해서는 아니 되고, 하나의 대답이 고요한 자신 안에서 서서히 깨어나길 기다리는 것, 비록 시작에서 멀어지더라도, 그것이 《두이노 비가》를 읽는 시작입니까, 하고 묻는 것.

2.
“누구냐,”
릴케는 1911년 겨울,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 후작 부인의 호의로 두이노 성에 홀로 머무른다. 그곳에서 그는 불가사의하게도 무언가 자신에게 “누구냐, 나 울부짖은들, 천사의 대열에서 그 누가 / 내 울음에 귀 기울여준단 말이냐?”라고 구술하는 비의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절규는 〈제1비가〉의 시작이 된다.
이 시집을 읽는 당신은 ‘누구’냐.

3.
죽음 곁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고, 사랑하는 자들에겐 모든 것이 비밀이다. 그것이 죽음이라도. 그것이 사랑이라도. 그것이 시라도. 이 조그만 시집에는 죽음이, 사랑이, 비밀이 가득하다.

4.
《단단한 독서》로 이름을 알린 옮긴이는 《두이노 비가》를 5년여에 걸쳐 번역하고 다시 번역하고 다시 번역했다. 한국어의 모든 비가 번역을 비롯하여,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영어, 일본어로 마흔 개에 가까운 비가 번역과 몇몇 주석을 살피며 각각의 세계와 마주했다.

5.
옮긴이는 이렇게 말한다: “애초에 비가는 번역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읻다의 이름으로 옮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언제나 볼 것이 남아서.

6.
옮긴이가 들려준 꿈 이야기:
꿈에서 《두이노 비가》와 뿌리가 같은 동양 고전을 발견했다. 출처를 알 수 없어 다들 학자가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이름이 비슷하여 살펴보았다. 괴상망측한 것뿐이었는데, 마치 비가가 구양진경이면 이것은 구음진경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두이노에서 산책하던 릴케는 돌연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고, 그것이 바로 〈제1비가〉의 처음이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구양진경을 깨우친 신선, 초인, 천사, 천인, 야차, 신귀가 비의적인 주술을 발휘하여 진경을 전수한 것이 아니었을까.

7.
“이상하다, 희망을 계속해서 희망할 수 없음은. 이상하다,”
둘러 바라본다, 세상을.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과 희망할 수 없는 사람들. 어떤 사랑? 어떤 희망? 순수한 사건을 위해 세워진 것들은 무엇인가. 순수한가?

8.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뎌내는 저 끔찍한 것의 시작”
“모든 천사는 끔찍하다.”
“끔찍한 미소를 두고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아름다움, 천사, 끔찍함, 그리고 끝내 사랑.

9.
우리 곁이 마음에 들어 떠나지 않는 것들:
천사, 밤, 한 여인, 한 소녀, 매우 오랜 아픔, 비문 하나, 자신의 이름, 천사들, 밤들, 창조의 응석받이들, 거울들, 웃음, 사랑하는 사람들, 함께 내딛던 첫 발걸음, 강물과 바위 사이, 걸맞음, 당신의 가냘픈 몸, 밤사이, 경계, 하나로 이어진 철새들…….

10.
《두이노 비가》에는 죽음과 영원, 사랑과 작별, 아름다움과 끔찍함, 열림과 닫힘, 무너짐과 태어남이 있다. 하지만 각각의 단어는 사실 없다. 이 시집에는 시가 없다. 시 대신 우리가 있다. 삶이 있다. 죽음이 있다. 사랑이 있다. 가냘프게, 그러나 간곡하게 부르는 소리가 있다. 스스로의 부름에 한계를 짓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소리다. 〈제1비가〉에서 〈제10가〉는 하나의 흐름이다. 하지만, 고분고분하지 않은 흐름이다. 우리를 휩쓸어갈 흐름이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 시들을 읽어나갈 수 없다. 말할 길 없는 세계이므로. 문이 닫힌 교회 앞에서 드리는 기도처럼. 입 밖으로 나온 우리의 고백은 기도로서 태어나지 않는다. 절규로서, 비명같이 순수할 따름이다. 우린 무엇을 원하면서도 무엇도 원치 않는 상태다. 그것이 최초의 상태라면 우리에게 열린 곳은 ‘위’뿐이다. “잡을 수 없는 존재”는 그곳에 있다. “천사”도, “죽음”도, “영원”도, “연인”도 그곳에 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저 바깥은 아니다. 적어도 이 시집 안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에는 사실 있다. 시가. 고요한 시다. 대신, 우리가 없고, 삶이 없고, 죽음이 없고, 사랑이 없다. 위로 향한 것들은 끊임없이 올랐다가 떠난다. 당신과 나의 곁으로 떠난다. 우리의 곁으로. 그 곁에 있는 건 “끔찍한” 열림, 그것뿐이다. 그 열림만이 “우리를 사로잡고 위로하고 구제”한다. 사랑받음으로부터, 사랑함으로부터.


차례

제1비가 8
제2비가 20
제3비가 30
제4비가 42
제5비가 54
제6비가 68
제7비가 74
제8비가 86
제9비가 96
제10비가 108

주 124
옮긴이 말 131


책 속에서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뎌내는
저 끔찍한 것의 시작일 따름이기에.
놀라운 점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파괴하는 데 있어
냉담하다는 것이다. 모든 천사는 끔찍하다.

〈제1비가〉

물론 이상한 일이다, 더는 이 땅에 살지 못하고

미처 익히지도 못한 습관을 버려야 함은.
장미에, 제각각 약속하는 사물에

인간적 미래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은.

한없이 불안한 손에 안겨 있는 존재로

더는 남지 못하고, 부서진 장난감처럼

자신의 이름마저 내버려야 함은.

이상하다, 희망을 계속해서 희망할 수 없음은. 이상하다,

관계하는 모든 것이 그렇게 공간에 흩어져

나부낌을 바라봄은.

〈제1비가〉

사랑과 작별이

우리네 것과는 다른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듯 가볍게,

어깨에 걸려 있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라, 가슴 한껏 힘에 부풀어도

무게라곤 모른다는 듯 드리운 그들의 손은 어떠한가.

〈제2비가〉

추천사

조해진 (소설가)

릴케라면 <서시>나 <고독> 같은 순수 서정시를 썼다고만 알고 있었다. <두이노 비가>를 읽으며 그가 보고 느끼고 사유한 스펙트럼은 단순한 서정을 넘어 인간의 운명과 우주의 진실에까지 닿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신(천사)의 눈동자이다. 모든 생명은 순간을 살다가 죽지만 릴케의 시선은 그 순간에 깃든 영원성을 보며 동시에 그 영원성의 파괴마저 덤덤하게 아우른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죽음 이후까지를 넓고 깊게 보고 있는 릴케의 무정하게 슬픈 눈동자…….

좋은 시는 평범한 인간이 보지 못하는 먼 지평까지 열어 보인다. <두이노 비가>는 한 발 더 나아가 그 지평에 성을 지어 올린다. 창밖으로 생명의 비밀 한 조각을 품은 새들이 날고 거울 속에선 연인들이 유한한 사랑을 나누고 있으며 하늘엔 동이 트면 사라질 뭇별들이 점멸한다. 죽음을 안은 채 태어나고, 죽으면서 생명을 품는 이 거대하고도 아련한 두이노 성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계단 하나, 장작 하나, 정원의 벽돌 하나, 그 모든 사물들을 우리말로 실어 나른 번역가의 끈기 어린 안내가 있으니……. 부서지면서도 새로 세워지는 성이다. 반복되는 공허를 딛고 선 성이다. 그러니 조급해 말고 온 생애에 걸쳐 천천히 둘러보기를 권하고 싶다.

유계영 (시인)

열 번의 죽음은 열 번의 태어남이다. “열 번의 죽음을 거쳐서야”(옮긴이 말) 다다른 시이기 때문일까. 열 번 읽어도 어렵고 열 번 읽어도 깜짝깜짝 놀란다. 릴케가 “지상의 습관을 벗어던진” 채, 새로 태어나는 영혼을 마주할 때마다, 그 어리둥절한 진실 속에서 채집한 목소리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과거가 흘린 실오라기를 찾아 붙든다. 어제와 오늘의 연속적인 습관에 충실히 살아가기 위해. 그러나 “해석된 세계의 집”에 머물기를 거부한 릴케는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이 하나로 응축된 “보다 내밀한 비행으로” “조금 더 넓어진 대기”를 가늠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소하고 연약한 우리는 “천사”의 피부에 혀끝을 살짝 대어보고 그 아름다움이 감춘 끔찍함에 사로잡힌다.

이원 (시인)

음악이에요. 휘몰아치는 바람이 들어있기도, 잦아드는 울음소리가 들어있기도, 너머까지 한달음에 뚫고 나가는 휘발이 들어있기도 해요. 쌉싸름한 여운만이 남아 음악이 끝났음을 깨닫지요. 문득 문득 흰 날개를 보았을까요. 온통 검던 그것이 날개였을까요.

천사. 천천히, 낯설게 발음해 보았어요. 안에 고였는데 녹지 않아요. 사라지지 않아요. 천사를 품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높이, 별들이 있다. 새로운 별들. 고통의 나라를 수놓은 별들. 천천히 비탄이 별들을 부른다.-보시오,”(「제10비가」) 백년을 가로질러 ‘그 천사’가 왔습니다.

서대경 (시인)

아기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가 보인다. 반짝이는 허공이 보인다. 또는 짐승의 눈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서 우리는 문득 그것을 본다. 그들이 비롯한 곳, 또한 나와 당신이 비롯한 곳이 그 눈 속에 있음을 본다. 릴케의 천사가 그러하듯이, 그것은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무섭고 끔찍하다. 그 눈은, 그 허공의 일별은 즉각적으로 우리의 내면에 ‘에고’의 비참을, 또한 소멸의 공포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해석된 세계 너머에, 릴케 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로 보려는 인식’ 너머에 존재의 대문자가, 소용돌이치는 ‘알렙’이 있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언제나 떠나려는 자세를 벗지 못하는’ 우리의 눈 속에,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난 적 없는 그것이, 허공이, 소리치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황유원 (시인)

“모든 천사는 끔찍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아름다움은 필연적으로 끔찍함을 동반하고 마는 것을. 끔찍하지 않다면 그것은 희박한 것, 희박해서 결국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말은 그 끔찍함에 쫄지 않는다는 말이다. “치명적인 영혼의 새들이여, 너희를 알고도/ 그래 나 너희를 찬양한다.” 바로 그런 태도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쓰여진다. “천사에게 세계를 찬미하라. (…) 천사가 자못 놀라, 로마의 밧줄 꼬는 사람이나/ 나일 강의 도공 앞에서 네가 그랬듯이 멈춰 서게 되리라.” <제1비가>에서의 저 냉담하던, 당신들의 내면을 개돼지처럼 파괴하던 천사가 <제9비가>에 이르러서는 당신들 앞에 놀란 채 멈춰 서서 두 날개를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린 아직은 종이처럼 얇은 날개로 이 책의 135쪽까지 계속 날아가야만 하는 천사들. 종이처럼 얇은 날개로 한번 날아가 보는 천사들만이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종이처럼 얇은 날개로 한번 끝까지 날아가 보는 천사들만이 천사의 바깥까지 날아갈 것이다.

이제니 (시인)

역자인 최성웅은 옮긴이의 말에서 두이노 비가를 번역하는 일에 어떤 확신이 없다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도 당대의 뛰어난 시인과 학자들이 줄기차게 비가를 번역해오고 있는 사실이야말로 비가 번역이 개별 역자의 감각과 해석체계 차원에 머물러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해준다고 말하고 있다. 허나 실용문의 번역이 아닌 시의 번역에서, 단순히 문장과 문장을 의미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닌 차원에서, 개별적인 해석을 아우르는 가운데 개별 역자의 숨결이 읽히지 않는 번역판이라면 그것이 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독일어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전에 읽었던 번역본과의 비교 정도 해볼 수 있을 뿐으로, 그리하여 여전히 두이노 비가는 내게 미지의 무엇으로 남겨질 테지만, 나는 이 행간과 행간 사이에 묻어 있는 무언가 앞에서 가슴이 뛴다. 이전의 독서와 현재의 독서 사이에 드리워진 이 사이와 겹을 읽는 것을 괴롭고도 행복하게 여기면서. 이 얇고 작고 검은 책을 어디든 말아 쥐고 다니면서. 이 언어의 무거움과 무거움에 내내 전율하면서.


지은이 |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년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다. 릴케의 어머니는 릴케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르네Rene라 짓고,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열한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이후 로베르트 무질의 첫 장편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의 배경이 되는 육군고등사관학교로 옮기나 결국 자퇴한다. 1895년 프라하대학에 입학하고서 1896년 뮌헨으로 대학을 옮기는데, 뮌헨에서 릴케는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 시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를 독일식 이름인 라이너로 바꿔 필명으로 사용한다. 1901년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만나 결혼한다. 1902년 파리에서 로댕을 만나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는다. 클라라와 헤어진 릴케는 로마에 머무르며 《말테의 수기》를 완성하였으며, 이후 1911년에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 후작 부인의 호의로 두이노 성에서 겨울을 보낸다. 이곳에서 바로 전 세계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릴케 만년의 대작이며 10년이 걸려 완성할 《두이노 비가》의 집필을 시작한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릴케는 스위스의 뮈조트 성에 머무는데, 이곳에서 그는 폴 발레리 등과 교유하며 여생을 보낸다. 발레리의 작품을 독어로 번역하고 또 직접 프랑스어로 시를 쓰던 시인은 1926년 백혈병으로 스위스의 발몽 요양소에서 죽는다.


옮긴이 | 최성웅

1984년 서울 출생.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와 해당 언어권의 문학을 가르치거나 옮기며 살고 있다. 서울에서 국문학을, 파리에서 불문학과 독문학을, 베를린과 뮌헨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키토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년간, 그리고 현재는 도쿄에서 일과 병행하며 희랍어와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읻다출판사를 세워 대표로 일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폴 발레리의 《테스트 씨》, 프랑시스 퐁주의 《사물의 편》 등을, 독일어권에서는 릴케의 《두이노 비가》 등을 옮겼으며, 스페인어권에서는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Rayuela: 팔방치기》를 작업하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https://linktr.ee/monvasistas)에서 번역과 수업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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