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폴 발레리
  • 옮긴이 최성웅
  • 원제 Monsieur Teste(1896)
  • 발행일 2017년 5월 24일
  • 판형 125×200mm
  • 면수 152쪽
  • 정가 12,000원
  • ISBN 9791196014940
  • 전자책 미출간

책 소개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 폴 발레리가 탄생시킨
결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가장 새롭고 독창적인 인물

어떠한 과오로도 얼룩지지 않은 가공할 괴물,
실제의 시간 속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존재,
‘나’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일체를 목격하는 자,
가장 불가능한 두뇌 에드몽 테스트

정신의 법칙들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명료한 인식에 도달하려 했던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 폴 발레리. 《테스트 씨》는 발레리가 스물세 살에 쓴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에서 시작된다. 그는 이 단편을 쓴 이후 돌연 절필하고 오랫동안 아무런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내면의 정신 활동을 연구하며 침잠했다. 그러다 이십여 년 만에 다시 문단에 나타나 테스트 씨에 대한 새로운 글들을 발표하였고, 이후 평생에 걸쳐 테스트 씨 연작을 고치고 다듬었다. 이 책은 그 결실로서 발레리가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시절 고민했던 정신의 탐구에 대한 초기 사상부터 수십 년 뒤 당대 프랑스 최고의 지성인이자 시인, 산문가로서 우뚝 서기까지의 발레리 최대의 사유의 결과물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 보르헤스는 《테스트 씨》 연작의 첫 단편인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을 가리켜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소설”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어떠한 모호함도 발설하지 않는 자

화자는 어느 날 우연히 카페에서 테스트 씨라는 사십 대 무렵의 기묘한 남자를 알게 된다. 증권가에서 잔챙이 매매를 하면서 살고 비비엔 거리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그와 밤에 함께 극장에 가게 되면서, 화자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테스트 씨는 눈짓과 손짓이 분명치 않으며 누가 인사를 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웃지도 않는다. 마치 모든 인간적인 사소한 문제를 무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기억이나 통찰, 의식과 관련해서는 그 누구와도 다른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테스트 씨를 관찰하던 화자는 그가 ‘정신의 법칙’을 발견한, 자기 생각의 주인이라고 결론 내리게 된다.

“나는 진짜 내 것인 것들로 소급하고자 했다”

나는 문학만이 아니라 철학마저 거의 다 내가 그토록 진심으로 거부하던 모호한 것과 불순한 것 사이로 내던져버렸다.

서문 중에서

발레리는 ‘지적 희생’이 따르는 문학적 글쓰기에 회의심을 품고 자신의 글에 극단적 언어의 정확성을, “언어의 능력 바깥에 있는 완벽과 순수”를 담으려 했다. 에드몽 테스트는 발레리가 ‘정확성’의 문학적 구현이라는 가능할 법하지 않은 시도로서 창조한 독창적인 인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정신 현상의 분석에만 몰두하는 특이한 캐릭터다. 이러한 독특한 등장인물은 인식의 불확실성에 대해 고민하던 젊은 발레리가 기존의 문학과 철학을 비판하며 스스로 내놓은 해답이었다. 발레리는 정신의 법칙들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명료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했다. 그가 젊은 날에 극심한 짝사랑의 고통 속에 겪은 감정적 파국이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오던 것을 무너뜨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렸기 때문일 것이다.

테스트 씨는 목격자다.

Conscious ― Teste, Testis.

본문 중에서

‘테스트’라는 이름은 ‘머리’를 의미하는 중세불어 teste와 ‘관찰자’를 의미하는 라틴어 testis를 어원으로 한다. 즉, 테스트 씨는 정신 현상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하나의 ‘두뇌’이자 자기 자신의 변화를 명료하게 포착하는 관찰자, 또는 목격자다. 작품을 집필하던 시기에 발레리는 하나하나의 개성이며 그 개성이 작동하는 체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좀 더 임의적이고, 그러므로 보편적인, 한 작업의 체계보다는 그 작업을 가능케 하는 방법에 집중했다. 테스트 씨는 발레리가 그렇게 제 정신의 역학원리를 탐구한 결과 탄생한, 어떠한 과오로도 얼룩지지 않은 가공할 괴물, 실제의 시간 속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존재, ‘나’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일체를 목격하는 인물이다. 인간성을 완전히 탈피한 순수한 의식의 산물인 것이다.

철학은 좀체 신용을 얻지 못하고 언어는 언제나 규탄의 대상이 되는 이 별난 두뇌 속에서, 임시적이라는 자각이 따르지 않는 사상은 거의 없다. 규정된 활동에 대한 기다림과 실행 말고는 남은 게 거의 없다. 짧고 굵은 그의 삶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의 관계를 설정 · 조직하는 역학원리(mécanisme)를 감시하는 것으로 그 소용을 다한다.

서문 중에서

발레리는 최초의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에 이어 1926년에 〈에밀리 테스트 부인의 편지〉, 〈한 친구의 편지〉, 〈테스트 씨의 항해일지 발췌〉를 한데 묶어 테스트 씨 연작을 발표했으며, 잡지에 새롭게 수록될 때마다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을 조금씩 개정하면서 작품을 완성해나갔다. 그는 죽기 전까지도 테스트 씨 연작을 새롭게 묶기 위해 작품을 집필하고 순서를 고심하였고, 결국 발레리의 유지를 받들어 기존 테스트 씨 연작에 새로운 작품들을 더해 1946년에 이르러 지금의 《테스트 씨》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테스트라는 불가능한 괴물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개인이 필요하다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은 등장인물과 서사적 줄거리를 가진 소설의 형태이지만, 그 후에 발표된 작품들은 점점 소설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에밀리 테스트 부인의 편지〉와 〈한 친구의 편지〉까지는 다른 인물의 목소리를 빌어 테스트 씨를 묘사하는 형태를 취하지만, 다른 장들을 살펴보면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고, 개연성 있는 스토리보다는 독백과 짧은 단상들로 채워져 있다. 이 작품은 수십 년에 걸쳐 집필되었고, 하나로 체계로 보려는 일반적인 감각으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정신현상의 작동 원리를 이처럼 다양한 등장인물의 관점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테스트 씨가 열어 보여주는 세계는 우리의 안목을 넓히고 ‘지성’과 ‘정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준다. 옮긴이는 이 난해한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 일반적인 논리로 자신을 무장한 채 책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 안전을 도모하지 말고, 매 순간 자신의 감각과 의미에서 발생된 논리를 의심하면서 읽을 것을 당부한다.


차례

서문 4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 13
에밀리 테스트 부인의 편지 35
테스트 씨 항해일지 발췌 55
한 친구의 편지 75
테스트 씨와 함께한 산책 95
대화 101
테스트 씨의 초상 109
테스트 씨의 몇몇 생각 121
테스트 씨의 끝 135

해제, 또는 역자의 변 139


책 속에서

최선이든 최악이든, 이 중에 내가 간직하려던 것은 없다. 남을 수 있는 것이 남았을 뿐.

15쪽

종종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나는, 어느 고통스러운 정황을 샅샅이 들춰내 밝혀내기가 두려운 나머지 온 힘을 다해 나를 끝맺으려 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타인들이 제 생각을 표현한 것에 견주어 우리가 너무도 많이 우리 고유의 생각을 가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후 귓가를 울리는 수십 억 마디 말이나 그에 담긴 의도에 나는 동요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남에게 내뱉은 모든 말이 언제나 내 생각과 구별됨을 느꼈다. 더는 변하지 못할 말들이기에.

16쪽

내가 보는 바가 나를 눈멀게 한다. 내가 듣는 바가 나를 귀먹게 한다. 내가 아는 바가 나를 무지하게 한다. 나는 아는 만큼, 아는 만치 무지하다. 내 앞을 밝히는 이러한 빛은 일종의 가림막으로, 밤과 빛을 뒤덮는 더욱… 더욱 어떠하단 말인가? 기이한 전복으로 이곳의 원이 닫힌다. 하여 앎은 존재에 걸친 구름이고, 반짝이는 세계란 각막을 덮은 백반이며, 명료하지 못함이다.
여기 내가 보는 모든 것을 거두어 가소서.

59쪽

인간은 언제나 생각의 정상에 서서, 사물이나 풍경의 한계 위로 두 눈을 부릅뜨니….
저 자신의 ‘진리’를 받아들이기란 불가능하다. 진리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때(이는 인상의 문제다), 동시에 익숙지 않은 또 다른 자신을 형성하게 되고… 그러함에 자랑스러워하고, 그러함에 시샘한다…(이는 내적 정치의 극치다.)
맑은 와 혼탁한 사이, 올바른 와 죄지은 사이에, 오랜 증오와 오랜 타협이, 오랜 포기와 오랜 애원이 있다.

61쪽

내가 지닌 미지가 나를 나로 만든다.
내게 있는 서투름이, 불확실함이,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나약함, 나의 연약함…
결함이 내 시작의 바탕이 된다. 불능이 내 기원이다.

62쪽

나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필요라는 낱말마저 내게는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그러니 나, 무언가를 행하리라. 내가 나에게 하나의 목적을 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어떠한 것도 나를 넘어서지 않는다. 나는 약간이나마 나를 닮은 존재들을 만들기도 할 것이며, 그것들에게 눈과 이성을 줄 것이다. 또 그들이 내 존재를 두고 무척이나 막연한 마음이 들게 할 것이며, 그리하여 그것들이 내가 준 이성을 통해 내 존재를 부인하는 데 이르게 하리라. 그러면 그들의 두 눈은 나 자신이 아닌 사물들의 무한함을 바라볼 것이니.

130쪽

지은이 | 폴 발레리(Paul Valéry)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세트에서 나고 자랐으며 해양대학에 입학하려다 포기하고 몽펠리에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부터 앙드레 지드와 말라르메 등과 교우했는데 스물이 채 되지도 않은 나이에 이미 문학가로서 필력을 인정받았다. 법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892년, 감수성의 혁명을 겪는다. 이 사건이 발레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고, 이를 계기로 스물네 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Introduction à la méthode de Léonard de Vinci〉(1895)과 자신의 이름을 프랑스 문단에 각인시킨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La soirée avec monsieur Teste〉(1896)을 세상에 내놓는다. 1897년부터 1917년까지 이십 년 동안 문학적 칩거에 들어가 정신의 내적 기능을 연구하고 자신의 잠재 지성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며 대외적 작품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러한 침묵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계속되었으나, 1917년에 〈젊은 파르크La Jeune Parque〉를 발표하며 인생에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이하고 유럽 전역에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청년 시절에 쓴 시들을 《옛 시 모음집Album de vers anciens》(1920)으로 묶고, 〈해변의 묘지〉, 〈나르시스 단장〉 등을 한데 모아 《매혹Charmes》(1922)으로 출간했다. 《바리에테》, 《외팔리노스》, 《드가, 춤, 데생》 등을 발표하며 평생 문학인으로 살다 1945년 생을 마감했다. 사후작으로는 《나의 파우스트》 등이 있다.


옮긴이 | 최성웅

1984년 서울 출생.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와 해당 언어권의 문학을 가르치거나 옮기며 살고 있다. 서울에서 국문학을, 파리에서 불문학과 독문학을, 베를린과 뮌헨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키토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년간, 그리고 현재는 도쿄에서 일과 병행하며 희랍어와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읻다출판사를 세워 대표로 일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폴 발레리의 《테스트 씨》, 프랑시스 퐁주의 《사물의 편》 등을, 독일어권에서는 릴케의 《두이노 비가》 등을 옮겼으며, 스페인어권에서는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Rayuela: 팔방치기》를 작업하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https://linktr.ee/monvasistas)에서 번역과 수업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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