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노발리스
  • 옮긴이 박술
  • 원제 Hymnen an die Nacht(1800)
  • 발행일 2018년 5월 17일
  • 판형 125×200mm
  • 면수 240쪽
  • 정가 14,000원
  • ISBN 9791196283230
  • 전자책 미출간

책 소개

‘시’와 ‘철학’의 낭만적인 결합
〈밤의 찬가〉〈꽃가루〉〈신앙과 사랑〉

노발리스, 파편을 통해 완전함을 지시하다

세상은 낭만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 내가 흔한 것에 높은 의미를, 평범한 것에 비밀스러운 모습을, 알려진 것에 미지의 존엄을, 유한한 것에 무한하다는 가상을 부여한다면, 대상을 낭만화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노발리스의 미번역 작품들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출간된 작품으로는 유일한 〈밤의 찬가〉를 비롯하여 슐레겔 형제의 문예지 《아테네움》을 통해 발표되었던 철학적 파편집 〈꽃가루〉 그리고 노발리스의 정치적 견해를 엿볼 수 있는 〈신앙과 사랑〉까지, 그의 생전에 출간되었던 세 작품은 물론이고 스물아홉에 맞이한 때 이른 죽음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유고로 남은 철학적 파편들도 엄선하여 담았다. 문학과 철학, 종교와 자연과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넘나들며 포괄적인 사상을 펼쳤으나 우리에게는 전설에 나오는 꽃을 찾아 꿈속을 헤매는 미완성작 《푸른 꽃》의 저자로서만 알려진 노발리스. 이 책은 노발리스의 문학적·철학적 작품들을 총체적으로 수록함으로써 시인-철학자로서의 노발리스의 진면목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여러 학문을 융합하면서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 했던, 그 안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전망과 기대를 녹여냈던 노발리스의 생생한 작품들을 만나보자.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

노발리스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은 과학 혁명으로 세계가 합리적으로 해명되면서 굳건했던 신앙 체계가 흔들리고 봉건 사회가 붕괴하고 정치적으로는 왕권과 교권이 위기를 맞이한 이래로 수학, 물리학, 화학, 의학 등의 각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들이 폭발적으로 배출되던 시대였다. 이성의 힘을 위시한 계몽주의로 근대화가 촉진되고 프랑스 혁명이 전 유럽을 뒤흔드는 이러한 배경에서 낭만주의가 발원했다. 낭만주의자들은 기계와 과학이 지배하는 합리주의적 문명의 뒤로 한발 밀려나 잊힌 신비로운 자연의 품으로, 자유로운 인간 정신의 무한한 원천으로 돌아가기를 꿈꿨다. 현재를 공허하고 메마른 공간으로 파악하고 고대를 신이 거하는 이상적이고 마법적인 황금기로 묘사한 실러를 존경하며 따르고, 자아의 자기 확립을 주장하고 주체의 힘을 강조한 피히테의 철학을 흡수하며, 슐레겔 형제와 문학과 철학에 대한 사유를 나누고 교류했던 노발리스는 자연에 내재된 신성과 인간 정신의 무한한 창조력에 주목하며 낭만주의 파편들을 폭발적으로 써내려갔다. 전통적인 학문의 방식을 탈피하고 시와 철학의 경계조차 벗어난 파편이라는 형식 속에서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이 꽃피어났다.

“사랑하는 자는 영원히 균열을 느껴야 하며,
상처를 항상 열린 채로 두어야 한다”
약혼녀 소피와의 짧은 사랑과 사별

빛은 그 시간이 이미 정해져 있다 하나, 밤의 지배는 시간도 공간도 없이 이루어지도다. ― 잠은 영원히 지속되나니. 성스러운 잠이여 ― 밤에 바쳐진 그들에게 너그러이 기쁨을 베풀기를, 이 지상에서 낮의 노동에 지친 자들이니.

〈밤의 찬가〉 제2찬가 중에서

이성과 빛을 중시하는 전통을 깨고 그 대척점에 있는 밤을 찬양하고 끌어올린 작품 〈밤의 찬가〉는 노발리스의 안타까운 사랑의 경험에서 탄생했다. 노발리스는 1795년 스물셋의 나이에 열 살 연하의 소피 폰 퀸과 만나 약혼을 하는데, 소피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폐결핵을 앓다가 1797년 3월 사망하고 만다. 슬픔에 잠긴 그는 어느 날 소피의 무덤을 방문했다가 수백 년의 시간을 찰나와 같이 느끼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 경험이 〈밤의 찬가〉의 집필로 이어졌고, 특히 제3찬가에는 당시의 경험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총 여섯 편의 찬가로 이루어진 〈밤의 찬가〉에서 노발리스는 밤과 죽음의 세계를 칭송한다. 연인의 죽음이라는 극한의 고통은 시인을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입교시켰다.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되었던 것, 모든 현상의 근원이며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되었던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그에게 잠은 시공을 초월한 안식처로서 다가온다. 밤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는 통합의 순간, 계몽의 빛은 세계를 분열로 이끈 존재로 묘사된다. 밤은 또한 사랑과 동경의 시간이자 태초로 돌아가는 시간이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 가득한 마법 같은 시간이다. 노발리스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일 년 전인 1800년 세상에 나온 〈밤의 찬가〉는 이후 니체를 비롯한 후대의 사상가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고, 신비의 정신을 상징하게 된 ‘밤’의 이미지는 독일 문학과 사상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척박한 정신적 토양에 뿌려진 낭만주의 파편들

1797년 소피를 잃고 큰 슬픔에 빠진 노발리스는 한동안 철학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1798년 슐레겔 형제가 펴낸 문예지 《아테네움》의 창간호에 실린 〈꽃가루〉는 노발리스가 독립 작가로서 독자와 만난 첫 번째 작품으로, 여기에는 노발리스가 충격 속에 깨달은 “신비주의”가 125편의 짧은 글들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꽃가루”라는 제목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새로운 꽃을 피워낼 잠재력을 지닌 꽃가루처럼, 어딘가에서 새로운 사유의 꽃을 피워낼 글의 파편들을 의미한다. 이 파편들은 국가론·교육·번역론·죽음·문학·종교 등 방대한 주제를 다루며, 일관된 통일성 없이 유기적인 흐름으로 서로 이어졌다가 다시 떨어져 나오고, 마치 잘 가꾸어놓은 식물원을 걷는 듯 독자는 그 어우러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사유의 공간 여기저기를 거닐게 된다.

친구들이여, 대지가 빈약하니, 적은 수확이라도 얻고자 한다면 씨앗을 넉넉히 뿌려야 한다네.

〈꽃가루〉 중에서

당대의 정신적 대지가 척박하다고 여기고 가능한 한 많은 낭만주의 파편을 뿌려야 한다고 여겼던 노발리스는 곧바로 다음 작업에 돌입했다. 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프로이센 왕정 월간지》에 발표한 〈신앙과 사랑〉을 통해 “황금기”의 도래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정치적 전망을 현실 정치 상황과 결부시켜 발표했다. 막 즉위한 젊은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전왕과 비교해 도덕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노발리스는 그를 이상적 군주로 상정하고 그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관념의 낙원”을 그려내고 있다. 〈신앙과 사랑〉은 노발리스가 현실의 정치적 현실을 낭만화하여 시적 언어로 표현한 문학 작품이자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철학을 시작할 때, 우리는 궁극의 진리를 파악하고 세계와 삶에 대한 최종적인 인식을 손에 넣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철학의 근본 동력은 자기 배반적인 것이다. 절대와 보편을 향해 관념의 손길을 뻗치면 뻗칠수록, 우리는 개별과 파편만을 얻게 된다. (…) 이 견디기 어려운 대립을 새로운 철학으로 승화시키는 사유의 움직임에 초기 낭만주의의 핵심이 있다. 노발리스에게 철학은 정립된 생각에서 안도하며 머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보편과 개별, 죽음과 삶, 정신과 육체, 꿈과 각성 사이를 지치지 않고 오가며 “정신의 진정한 계시”를 찾는 환상적인 여행의 기술인 것이다.

박술, 〈작품 해제〉 중에서

“모든 학문은 시가 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한 최고로 선하고 시적인 인간이 되라

이후의 파편들은 1798년 2월부터 5월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로, 시인의 이른 죽음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유고로 남았다. 〈로고스학 파편집〉, 〈로고스학 파편집2〉, 〈시학〉, 〈미학〉은 생전에 노발리스가 직접 선별하여 제목을 붙여둔 것이고, 60번부터 137번에 이르는 파편들은 미처 정리되지 못한 방대한 양의 유고 파편들 중 일부에 해당한다.

이 파편들에서는 노발리스가 최첨단의 지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흡수하여 내놓은 결과를 볼 수 있다. 노발리스는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철학적으로 재해석하는가 하면 화학철학적 사유를 통해 서로 상이한 물질들의 분해와 결합의 법칙, 화학적 친화력에 의한 물질들의 이합집산의 본성을 가지고 세계를 풀이한다. 세계의 ‘낭만화’는 “자승(自乘)”이라는 수학 용어로 부연된다. 현상 세계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는 정도가 아닌, 스스로에 내재된 힘을 통해 질적으로 제곱한 결과가 바로 ‘낭만화’인 것이다.

또한 노발리스에게 시인은 초월적 의사로 묘사된다. 모든 병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발리스는 프랑스 혁명 또한 의학적 관점에서 살피고 진단했으며, 나아가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 노발리스, 그는 철학자인가 시인인가! 노발리스는 그 둘을 대립이 아닌 상호보완으로 이해했다. 시인-철학자로서 그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글 안에서 그 융합의 형태를 찾으려 했다. 노발리스의 작품은 마치 건강한 씨앗을 뿌린 것처럼 후대의 사상가들에게로 파종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노발리스의 글에는 후대의 파편적 작가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불완전성에 대한 절망과 불안을 찾아볼 수 없다. 파편을 통해 완전함을 지시하고, 혼돈을 통해서 낙원에 이르겠노라는 노발리스의 확신에는 이상스러울 만큼 시대착오적이고, 마음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운 면모가 있다. 동시대의 횔덜린과 유사하게, 그는 시간을 거슬러서 사유한 사람일 수도 있다.

박술, 〈작품 해제〉 중에서

차례

밤의 찬가 9
꽃가루 33
신앙과 사랑 85
로고스학 파편집 123
로고스학 파편집2 141
시학 147
미학 157
독백 195

작품 해제 200


책 속에서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꿈꿀 때, 우리는 깨어남에 가깝다.

39쪽

책을 집필하는 예술은 이제껏 발명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막 발명되려는 찰나에 있다. 여기 이 파편들은 문학적 파종이다. 물론 개중에는 죽은 씨앗도 있겠지만 ― 단 몇 개만 싹을 틔워도 좋다.

75쪽

사랑에 빠지면 도처에서 그 대상을 발견하고, 도처에서 그와 닮은 것들을 본다. 사랑이 클수록, 그를 닮은 세계도 그만큼 넓고 다채로워진다. 내 연인은 우주의 줄임말이고, 우주는 내 연인을 풀어쓴 것이다. 학문과 친한 자에게는, 학문이 그의 연인을 위해 온갖 꽃과 선물을 손에 쥐여줄 것이다.

92쪽

어떤 사물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면 ― 나는 그것의 목적이다 ― 그것은 나를 가리키며 ― 나를 위해서 거기 있는 것이다. 내 의지가 나를 확정하듯이 ― 내 소유물도 그렇다. 세계는 내 의지대로 존재해야 한다. 근원적으로, 세계는 내 의지대로 존재한다 ― 그러므로 세계가 의지와 어긋난 모습을 보인다면, 이 결과물의 오류를 위의 요인들 ― 또는 그중 하나에서 찾아야 한다. 세계가 변질된 세계이거나 ― 세계에 상응하는 내 의지가 진정한 내 의지가 아니거나 ― 또는 둘 모두가 구분할 수 없는 방식으로 동시에 진리일 것이다. 변질된 나 ― 변질된 세계. 본래 모습의 회복.  

188쪽

자신을 뛰어넘는 행위는 생명의 생성에 있어 ― 항상 최고점이자 ― 근원점이다. 화염도 이런 행위일 뿐이다 ― 마찬가지로 모든 철학이 시작되는 지점은, 철학의 주체가 스스로를 철학하는 순간이며 ― 즉, 스스로를 연소(확정·강제)하고, 다시금 부활(불확정·해방)시키는 순간이다 ― 이 과정의 역사가 곧 철학이다. 이처럼 모든 살아 있는 도덕성은, 내가 덕목을 근거로 덕목에 반하여 행동할 때 시작된다 ― 이와 함께 덕목의 생명이 시작되니, 그러면서 수용력이 무한히 증가할 수도 있다 ― 이 과정에서 수용력은 자기 생명의 가능성 조건인 경계를 단 하나도 잃지는 않는다.

192쪽

지은이 | 노발리스(Novalis)

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Friedrich von Hardenberg)로서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철학자다. 1772년에 북독의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실러, 슐레겔 형제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 철학적 활동을 시작했다. 슐레겔 형제가 간행한 문예지 《아테네움》에 〈꽃가루〉를 발표하며 1798년에 문단에 등장했다. 이어 같은 해 〈신앙과 사랑〉을, 1800년에는 〈밤의 찬가〉를 발표했다. 1801년에 지병인 폐결핵으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리하여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소설 《푸른 꽃》을 비롯하여 그가 생전에 계획하고 집필한 방대한 양의 철학적, 문학적 텍스트는 유고로 남았다. 그가 남긴 글은 수많은 세대에 걸쳐 예술, 문학, 철학 등 폭넓은 분야에 지대한 영감을 주었다.


옮긴이 | 박술

유년을 독일에서 보내고 뮌헨 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육군사관학교 철학과 조교수로 근무했으며, 힐데스하임 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 《시와 반시》 신인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전쟁 일기》, 니체의 《비극의 탄생》(공역),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철학 파편집》, 트라클의 《몽상과 착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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