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게오르크 트라클
  • 옮긴이 박술
  • 원제 Traum und Umnachtung
  • 발행일 2020년 4월 23일
  • 판형 125×200mm
  • 면수 260쪽
  • 정가 12,000원
  • ISBN 9791189433093
  • 전자책 미출간

책 소개

표현주의의 대표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 시 선집
1914년, 옛 세계가 무너지는 “영혼의 무풍지대”를 살아낸
트라클의 기록과 기억

진리를 좇아 생각함은 — 많은 아픔이로다!

〈밤에 바친 정신〉 초고 중

종족의 몰락이 마음을 뒤흔든다.
이 시간, 보는 자의 눈은
자신의 별들의 황금으로 차오른다.

〈헬리안〉 중

게오르크 트라클이라는 현상

트라클의 공감각적 세계관은 그의 심적 이미지들과 만나 뚜렷한 형상을 얻으며, 동시에 시 안의 음악성과 결합한다. 말할 수 있는 것, 경험 가능한 것의 문학적 한계선을 걷는다는 점에서, 트라클의 시는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열려 있다.

마르쿠스 엔더, 인스브루크 브레너 문헌보관소 소속 트라클 연구자

1887년 잘츠부르크에서 출생한 게오르크 트라클은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 2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도시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트라클이 그가 가장 아꼈던 시 중 하나인 〈헬리안〉을 발표하며 문학적 성취를 이루게 된 인스브루크 시기의 활동은 루트비히 폰 피커의 지지와 우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약제장교로 참전한 1차대전, 그로데크 전투에서 참패한 광경에서 무너져 내린 정신을 다시 추스르지 못했던 그는 마지막 유작인 〈그로데크〉와 〈비탄〉을 폰 피커에게 편지로 전한다.

이처럼 세기말과 전쟁을 목전에 둔 유럽의 시대적 상황과 몰락을 위시한 데카당스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하고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강렬한 인상과 영감을 전한 게오르크 트라클이 생전에 발표했거나 발표를 승인한 모든 시를 엮어 《몽상과 착란》으로 출간하였다.

이미지의 병렬과 반복, 그리고 변용

우리는 얼마나 의미 없이 분열된 삶을 살고 있는가!

1910년 7월 부쉬벡에게 보낸 서한 중에서

게오르크 트라클의 작품은 비의적인 어휘, 다양하고 풍성한 시각적 지각으로 표상된 자연, 음악적인 구성이 변용되어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러한 형상성을 통해, ‘몰락’, ‘방랑자’, ‘영혼’ 등의 이미지가 다양한 색채와 결합하고, 이미지와 이미지를 낯설게 병렬시킴으로써 시를 하나의 회화 작품처럼 표현한다. ‘표현주의 병렬양식’으로 알려진 것처럼 상이한 이미지들을 한 공간에 동시에 드러내 보임으로써 이미지의 공존을 구현한다.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의 대표작 〈바람의 신부〉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며 트라클이 시로 표현한 〈밤〉이 일례이다.

또한 트라클 자신의 독창적인 어휘를 변주하고 또 되풀이함으로써 자신의 다른 시들과의 상호 연관성 속에서 파악되는 경우가 많다. 번역의 저본으로 삼은 《Das dichterische Werk》의 책임편집자인 발터 킬리Walter Killy에 따르면 “트라클은 한 행 한 행씩 시를 쓰며 결구에 도달하게 되면 어떤 다른 결론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트라클 시는 내적인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기에 《몽상과 착란》에서 엮은 시들을 교차해 읽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한다.

고통의 내면화와 존재의 자리밝힘

트라클의 시는 해방의 순간의 기록이며, 깊은 어둠 속에서 보이는 한 줄기 빛을 포착한 기억이다. 시는 미적 경험에 의지하여 꽃을 피우지만, 시인이 거두어들인 내면의 모순을 화해시킨다는 점에서 구원이며, 또 진리이다. ‘진리를 좇아 생각함은 ―많은 아픔이로다!’

역자 후기 중에서

트라클의 시의 특징 중 하나는 고통의 내면화이다. 후기시로 갈수록 ‘나’라는 시적 자아는 사라지는데, 이는 지난한 현실이 시대가 겪는 공통의 문제라는 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추상화되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함께 실존에 대한 불안감은 정착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이미지인 ‘방랑자’를 통해 세기말의 세태를 벗어나지 못한 정신의 상태의 반영을 드러낸다. 이러한 트라클의 방랑자는 자유와 도피를 지향하는 존재가 아니라, 1인칭의 시적 자아를 포기함으로써 가능한 세계의 체험, 곧 몰락에 대한 가능성의 실험이기도 하다.

예술의 본질은 시작이고, 시작의 본질은 진리의 수립이며, 따라서 예술은 진리를 작품-속으로-정립하는 것으로서의 시작이다.

하이데거 《숲길》 중에서

하이데거는 언어의 본질을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존재의 언어, 다시 말해 인간이 ‘말할 수 없는 것’을 언어가 말함으로써 존재의 진리가 발현되는 가능성을 시작詩作에서 찾았다. 하이데거의 시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시인은 프리드리히 횔덜린, 슈테판 게오르게, 마리아 라이너 릴케, 그리고 게오르크 트라클이다. 《언어로의 도상에서》의 두 강연, 〈언어〉와 〈시에서의 언어〉에서 트라클의 시론을 다룬 하이데거는, 특히 〈시에서의 언어〉에서 이른바 “‘존재의 장소론’을 통해 존재의 사유가 존재의 진리가 드러나는 장소를 지목하고 그것을 자리매김”하는 것을 가리키며, 하이데거는 이를 ‘자리밝힘’으로서의 사유라고 말한다. 이러한 존재의 진리의 자리를 밝혀주는 예로 트라클의 〈영혼의 봄〉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주목한다.

한층 어둡게, 물은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유희를 휘감는다.
슬픔의 시간, 태양이 침묵하며 우리를 바라보는 순간;
이제 영혼은 지상에서 낯선 것이 된다. 유령처럼 황혼은
푸르름이 되어 벌목된 숲 위로 내려앉고, 멀리서
어두운 종 하나가 마을에서 길게 울린다; 평화로운 동행.
죽은 자의 하얀 눈꺼풀 위에 조용히 은매화가 피어난다.

〈영혼의 봄〉 중에서

트라클의 여정을 좇아

《몽상과 착란》은 브레너 문헌보관소의 마르쿠스 엔더 박사의 서문과 역자 박술의 후기를 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루트비히 폰 피커는 트라클에 대한 기억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실이 현재 인스브루크에 위치한 브레너 문헌보관소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문헌의 수집과 연구, 전달에 목적을 둔 문헌보관소를 대표해 서문을 보내 주었다. 역자 후기는 한 세기가 지나도 유효한, ‘무너지는 세계에서 발견하고 붙잡은 아름다움’, 그리고 트라클이 보여준 작품과 삶 사이의 관계를 체험하고자 그의 삶의 여정을 좇는 여행기로 담았다.


차례

서문 5

시집(1913)
까마귀들 20
젊은 하녀 21
밤의 로망스 26
기타 소리 가득한 나뭇잎 사이로… 28
미라벨 성의 음악 29
저녁의 음울 30
겨울 황혼 31
롱델 32
여인의 복 33
아름다운 도시 34
모두 떠나간 방에서 36
소년 엘리스에게 38
폭풍 치는 저녁 40
저녁의 뮤즈 41
악의 꿈 43
영적인 노래 44
가을 46
저녁, 나의 마음 47
농부들 48
만령절 50
우울 52
생명의혼 53
변용의 가을 54
숲의 막다른 곳 55
겨울 57
오래된 방명록에 쓰다 58
변신 59
작은 음악회 60
인류 62
산책 63 심연에서 66
트럼펫 68
황혼 69
명랑한 봄 70
푄 바람 부는 교외 73
들쥐들 75
혼탁한 마음 76
오후에 흘려보낸 속삭임 78
시편 79
묵주기도송 82
죽음의 가까움 83
아멘 84
쇠락 85
고향에서 86
가을저녁 87
인간의 불행 88
마을에서 90
저녁노래 93
오팔 안을 세 번 들여다 봄 94
밤의 노래 97
헬리안 98

꿈속의 제바스티안(1915)
꿈속의 제바스티안
어린시절 108
시간전례가時間典禮歌 110
길 위에서 112
풍경 114
소년 엘리스에게 115
엘리스 117
호엔부르크 120
꿈속의 제바스티안 121
늪지에서 125
봄 126
란스의 저녁 127
묀히스베르크 산 128
카스파 하우저 129
밤 131
악惡의변신 132

고독한 자의 가을
공원에서 136
겨울밤 137
저주받은 자들 138
소냐 141
가장자리 142
가을의 영혼 143
아프라 144
고독자의 가을 145

죽음의 일곱 노래
고요와 침묵 148
아니프 150
출생 152
몰락 153
요절한 사람에게 154
유령 같은 황혼 156
저녁나라의 노래 157
변용 159
푄 바람 161
방랑자 162
칼 크라우스 163
입 닫은 자들에게 164
수난곡 165
죽음의 일곱 노래 167
겨울밤 169

세상을 떠난 자의 노래
베네치아 172
연옥 173
태양 175
사로잡힌 지빠귀의 노래 176
여름 177
여름의 끝자락 179
한해 181
저녁의 땅 182
영혼의 봄 185
어둠 속에서 187
세상을 떠난 자의 노래 188
몽상과 착란 190

유작들(1914 -1915)
헬부른에서 200
심장 201
수면 203
폭풍 204
저녁 207
밤 208
침울 210
귀향 212
비탄 214
밤에 바친 마음 216
동쪽에서 217
비탄 218
그로데크 219
계시와 몰락 221

해설 | 트라클의 생애와 작품 227


책 속에서

마을에서 많은 사람 즐기는 소리
정원사는 성벽 앞 풀을 베고
오르간 하나가 움직이며 소리와 금색의 빛을 뒤섞는다
소리와 빛을 섞는다.
사랑이, 빵과 포도주를 강복한다

〈영적인 노래〉 중에서

저기 오래된 반석 위의 걸인
기도하는 도중에 죽어버렸나
언덕에서 목동이 살며시 내려오고
천사 하나가 노래하는 숲에서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어린애들은 잠에 빠진다

〈영적인 노래〉 중에서

꽃피우듯 쏟아낸 것이 아주 부드럽게 스며들고
태어나지 않은 것은 자신의 고요를 돌본다.
연인들은 자기 별들을 향해서 피어나고
더욱 달콤해지는 그들의 숨결은 밤 속을 흐른다.

〈명랑한 봄〉 중에서

오! 너희 진리의 고요한 거울들이여.
고독한 자의 상아로 된 관자놀이에
타락천사의 빛이 반짝인다.

〈밤의 노래〉 중에서

정신이 외로운 시간에
햇볕 속을 걷는 일은 아름답다
여름의 노란 성벽들을 따라서.
풀밭에서 조용히 발소리가 울린다; 그러나
판의 아들은 줄곧 회색 대리석 속에서 잠들어 있다.

〈헬리안〉 중에서

종족의 몰락이 마음을 뒤흔든다.
이 시간, 보는 자의 눈은
자신의 별들의 황금으로 차오른다.

〈헬리안〉 중에서

어두운 해들의 의미를 네 크나큰 경건함은 안다,
외로운 방들의 서늘함과 가을의 의미를
그리고 성스러운 푸름 속에서 계속되는 빛의 걸음 소리.

열린 창문이 가늘게 떨린다; 눈물을 불러내는 언덕 아래 퇴락한 묘지의 풍경과,
전해 들은 전설에 관한 기억; 그러나 때대로 영혼은 밝아오니,
명랑한 사람들을, 암광의 봄날들을 생각할 때.

〈어린 시절〉 중에서

진정 그는 태양을 사랑했으니, 언덕을 하강하는 자줏빛 태양을,
숲의 길들을, 검은 새의 노래를
녹음의 열락을.

〈카스파 하우저〉 중에서

오, 너희 몰락의 쓰라린 시간이여,
우리 이제 돌로 된 얼굴을 검은 물들에 비추어 본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의 은빛 눈꺼풀이 빛나며 올라간다:
단 하나의 얼굴. 장밋빛 베개에서 유향 연기가 흐르고
부활한 자들의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저녁나라의 노래〉 중에서

한층 어둡게, 물은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유희를 휘감는다.
슬픔의 시간, 태양이 침묵하며 우리를 바라보는 순간;
이제 영혼은 지상에서 낯선 것이 된다. 유령처럼 황혼은
푸르름이 되어 벌목된 숲 위로 내려앉고, 멀리서
어두운 종 하나가 마을에서 길게 울린다; 평화로운 동행.
죽은 자의 하얀 눈꺼풀 위에 조용히 은매화가 피어난다.

〈영혼의 봄〉 중에서

오, 저주받은 핏줄이여. 더럽혀진 방들에서 운명이 완성된다면, 부패의 걸음걸이로 죽음은 집 안에 들어올 것이다. 오, 바깥이 봄이라면, 만발한 나무에서 사랑스러운 새 한 마리 지저귄다면. 하지만 밤의 여자가 있는 창가에 피어난, 얼마 없는 녹색은 회색빛으로 말라가고, 피 흘리는 심장들은 아직 사악한 사색에 잠겨 있다.

〈몽상과 착란〉 중에서

지은이 | 게오르크 트라클

오스트리아의 시인.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이후 빈, 베를린, 인스브루크에서 활동했다. 1912년 문예지 《브레너》의 발행인 루트비히 폰 피커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첫 번째 시집 《시집》을 펴내고 두 번째 시집 《꿈속의 제바스티안》의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이때 일어난 1차대전에 약제 장교로 참전하게 된다. 1914년 가을, 그로데크 전투 후의 자살기도 끝에 군 병원 정신병동에 수용되었고, 11월 3일 사망하였다. 사인은 코카인 과다복용이었다.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표현주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이다.


옮긴이 | 박술

유년을 독일에서 보내고 뮌헨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시와 반시》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육군사관학교 철학과 조교수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힐데스하임대학교 철학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역서로 비트겐슈타인 《전쟁일기》, 니체 《비극의 탄생》(공역), 노발리스 《밤의 찬가/철학 파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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