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나쓰메 소세키
  • 옮긴이 김재원
  • 발행일 2020년 10월 19일
  • 판형 132×225mm
  • 면수 448쪽
  • 정가 22,000원
  • ISBN 9791189433130
  • 전자책 미출간


책 소개

“세상은 울기에는 너무 우스꽝스럽고
웃기에는 너무 추악한 곳이니”
젊은 영문학도에서 시대의 작가가 되기까지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과 우정, 웃음과 눈물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삶과 문학론, 우정과 희로애락을 담은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이 읻다의 서한집 시리즈 〈상응〉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일생의 벗이었던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를 비롯해 소세키에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집필을 권유해 소설가의 길로 이끈 작가 다카하마 교시, 평생을 함께 한 아내 나쓰메 교코, 소세키가 가장 아낀 문하생이었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가족과 친구, 동료 문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수록했다. 영문학을 공부하며 하이쿠를 쓰던 청년기에서 시작해 정부의 명으로 고국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생활하던 런던 유학생 시절, 처음으로 쓴 소설이 큰 성공을 거둔 뒤 생계와 창작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년기를 지나 심각한 위장병에 시달리면서도 집필을 놓지 않고 젊은 문하생들과 교우하던 만년까지,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일생을 한 권에 담았다. 이 책은 일본 이와나미쇼텐에서 발행한 《소세키 전집》에 수록된 2천여 편의 편지 가운데 옮긴이 김재원이 145편을 선별하여 엮은 것으로, 소세키의 생애에 따라 5부로 구성되었다. 

“알 수 없구나, 태어나고 죽어가는 인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한시와 하이쿠를 읊으며 문장을 논하던 청년 소세키 

봄비 내리는   버드나무 아래를   젖은 채 걷네

1894년 3월 9일, 기쿠치 겐지로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부에는 도쿄대학 예비문 재학 시기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던 때까지의 글이 담겨 있다. 이 시기 소세키는 근대 하이쿠 문단에 선구적 발자취를 남기게 될 시인 마사오카 시키를 대학 예비문에서 만나 동갑내기 친구이자 평생의 문우로서 우정을 나눈다. 둘은 젊은 문학도이자 하이쿠 시인으로서 문장론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한편, 삶의 회의나 허무에 대해 허심탄회한 푸념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 익살 가득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독자는 고사성어와 선어(禪語), 한시, 중국 고전 등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한편 영어를 두서없이 혼용하는 소세키의 문장을 따라 가며, 전통과 서구 문물이 혼란하게 뒤섞이던 메이지 시대의 공기와 그 속에서 동양의 근대를 고민하던 한 청년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편지에는 또한 소세키가 쓴 하이쿠와 한시가 다수 포함되어, 소설가 이전에 시인으로 활동하며 문재를 갈고 닦던 젊은 소세키의 일면을 만나볼 수 있다.

“얼른 일본에 돌아가 광풍제월과 청천백일을 보고 싶소”
안개의 도시 런던에서 찾아온 신경 쇠약과 친우의 죽음

올려 마땅한   향 하나 없는 채로   저무는 가을

1902년 12월 1일, 다카하마 교시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900년, 소세키는 문부성의 명을 받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2부는 이 유학 시기의 편지들을 모았다.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소세키는 서툰 언어며 낯선 의식주, 빠듯한 생활비, 이방인으로서의 고독감 등에 시달리며 유학생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방에 틀어박힌 채 신경 쇠약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병석에 누운 벗을 위로하기 위해 펜을 들어 런던 생활을 유머러스하게 써내려간다. 시키와 교시가 발행하던 문예지 《호토토기스》에 〈런던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네 편의 산문은 소세키 문학에 담긴 해학과 익살의 시작점을 엿볼 수 있는 서한집의 백미다. 그러나 일본을 떠날 때 다시는 살아서 만나지 못하리라 짐작했던 벗 시키는 지병이 악화되어 곧 세상을 떠나고 만다. 공부가 바쁘다는 핑계로 편지를 자주 보내지 못한 소세키는 막막한 슬픔 속에서 “백옥루의 사람”이 되어버린 망우를 그리며 추모의 하이쿠를 편지에 써 보낸다. 

“나는 백대까지 내 글을 전하고자 하는 야심가라네”
소설가 소세키의 탄생, 그리고 생계와 창작 사이의 줄다리기

책의 3부는 귀국 후 도쿄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를, 4부는 대학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해 글을 쓰던 시기를 다룬다. 유학에서 돌아온 소세키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교 세 곳에 바삐 강의를 나간다. 경제적 압박과 생업의 스트레스로 신경 쇠약이 더욱 심해지자, 교시는 소세키에게 정신적 안정을 위해 소설을 써보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38세의 나이에 기분 전환 삼아 쓰기 시작한 첫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호토토기스》에 발표되면서 큰 인기를 얻는다. 그때부터 봇물 터진 듯 단편과 장편을 활발히 집필하며 소설가로서의 천명을 비로소 깨달은 영문학자 ‘긴노스케(소세키의 본명)’는 일본 근대 문학에 큰 발자국을 남긴 작가 ‘소세키’로 다시 태어난다. 이후 교직을 벗고 신문사 소속 전업 작가가 되면서, 소세키는 왕성한 창작열로 숱한 대표작을 탄생시킨다. 이 시기의 편지들은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도 스스로의 능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열의와 진중한 문학론으로 채워진 한편, 생계에 매인 월급쟁이로서의 고뇌 또한 담고 있다.

“세상은 끈기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불꽃 앞에서는 짤막한 기억밖에 허락하지 않습니다”
병과 고통 속에서 눈감는 날까지 이어진 문학적 열정

가을이건만   읽다 남은 책 한 권   언제 읽을지

1916년 9월 2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쓴 편지 중에서

만년의 소세키는 심각한 위장병에 시달리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평생 앓아온 신경 쇠약 또한 악화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편지를 모은 5부에서 독자가 만나게 되는 것은 질병의 피로와 무력감에 찌든 모습이 아닌, 어린 독자에게 다정한 답장을 보내고 문학가를 희망하는 청년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건네는 모습이다. 병을 앓는 중에도 소세키는 문하생들과의 모임인 ‘목요회’를 지속하며 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들과 활발히 교유하고, 집필 또한 꾸준히 지속하여 《마음》과 같은 대표작을 남긴다. “죽는 날까지 후진들을 위한 길을 개척하고 싶다”던 중년기의 말대로 소세키는 다음 세대의 작가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날카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중 한 명이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후에 다이쇼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소세키가 문학을 가교 삼아 세대를 건너 진솔한 우정을 나누었듯, 삶과 문학에 대한 소세키의 회포가 담긴 이 서한집을 통해 독자 또한 시대를 건너 그와 친교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차례

1부 · 청년 시절 1889~1899
2부 · 런던 유학 시절 1900~1902
3부 · 도쿄대 교수 시절 1903~1906
4부 · 아사히신문사 시절 1907~1912
5부 · 만년 1913~1916

옮긴이의 말
나쓰메 소세키 연보


책 속에서

50년 인생의 여로를 아직 반도 지나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숨이 차니 자네 앞에서 부끄럽기도 하고 스스로도 한심하다 싶지만, 이 또한 misanthropic 병이니 어쩔 도리가 없군. … 욕망의 바다에는 파도가 험해 언제 기슭에 가닿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그만두자, 그만두자, 눈멀고, 귀먹고, 육체는 재가 되어버려라. 나는 무미, 무취의 기묘한 것이 되어…

1890년 8월 9일, 마사오카 시키에게 보낸 편지

나 한번 굴러 원숭이 되고 나 또 한번 굴러 신이 되리. 나의 지나온 30년이 미간에 새겨져 있으니, 거울 속 내가 어찌 나를 속일 수 있으랴. 원숭이의 동족인지 신의 친척인지는 모름지기 스스로 얼굴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가늠하는 것이 제일이라. 나는 내 부모의 묘비명이고 내 자식은 내 전기의 초록抄錄일지니. 인간의 얼굴을 하고 두 발이 달린 말은 진선미眞善美를 태우고 무한한 공간을 달린다. 내가 달리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떠나 잘 달리는 다른 말을 찾으리라.

1897년 1월 (날짜 불명) 마사오카 시키에게 보낸 편지

그러고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동네 산책을 나간다. 거리에 나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키가 아주 크다. 거기다 귀염성이라곤 없는 면면들뿐. 이런 나라에서는 사람 신장에 세금이라도 매겨야 조금 더 검소한 작은 동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 맞은편에서 유독 키 작은 녀석이 온다. 잘됐군, 생각하며 스쳐 지나는데 나보다 5센티는 크다. 이번에는 얼굴색 묘한 웬 난쟁이가 다가오는가 싶었는데, 웬걸, 이 몸의 그림자가 거울에 비친 것이었다.

1901년 4월 20일, 마사오카 시키·다카하마 교시에게 보낸 편지

백년 후 박사 수백은 흙이 되고 교수 수천은 진흙이 되어 사라질 걸세. 나는 백대까지 내 글을 전하고자 하는 야심가라네. … 나는 주위의 칭찬을 구하지 않고 천하의 신앙을 구한다네. 천하의 신앙을 구하지 않고 후세의 숭배를 기대하지. 이런 희망을 가질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위대함을 느낀다네. 자네도 나와 같은 사람일세. 자네의 위대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때 이런 인과는 화로 위 눈처럼 녹아 사라질 걸세. 부디 힘쓰시길 바라네.  
사람이 진보하겠다는 신념을 품고 행동할 때 그 귀함은 신을 초월하고, 그때 비로소 천지를 뒤덮을 자아를 깨닫게 된다네. 이건 천자님의 위광으로도 얻지 못하는 것이지.

1906년 10월 21일, 모리타 소헤이에게 보낸 편지

저는 다만 홀로 갈 데까지 가다가 이윽고 도달한 곳에서 쓰러질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아무런 느낌이 없지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분명치 않아요. 나의 삶은 하늘에서 부여한 것인데, 그 삶의 의의를 절절히 음미하지 않는 건 아까운 일입니다. … 하늘이 부여한 목숨을 있는 힘껏 이용해서 스스로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지 않는다면 천의를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결심하고 그렇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1906년 10월 23일, 가노 고키치에게 보낸 편지

단순히 미적이기만 한 글은 옛 학자가 혹평했듯 그저 한문자閑文字에 지나지 않는다네. 하이쿠는 이 한문자 속을 소요하며 기뻐하고 있지. 하지만 그렇게 작은 세계에서 뒹굴면서는 이 크나큰 세상을 조금도 바꿀 수 없어. 게다가 크게 바꾸어야 할 적이 사방 가득 있다네. 문학을 생명과 같이 여기는 자라면 단순히 아름다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터. … 잘못되었을 때 신경 쇠약에 걸리든 미치광이가 되든 감옥에 갇히든 개의치 않겠다는 각오 없이는 문학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네. 문학자는 태평하고 초연하고 아름답게 세간과 동떨어진 작은 세계에만 머무른다면 모를까, 넓은 세계로 나온 이상 단지 유쾌함을 얻기 위함이라는 둥 그런 말이나 하고 있어서는 안 되네. 자진해서 고통을 찾아 나서기 위함이 아니면 안 되는 걸세.

1906년 10월 26일,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보낸 편지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 풀과 나무가 아름다워 보입니다. 특히 요즈음 봄볕은 더할 나위 없이 좋더군요. 저는 그런 것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14년 3월 29일, 쓰다 세이후에게 보낸 편지

오늘부터 매미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곧 가을이 오려나 봅니다. 
저는 이 긴 편지를 까닭 없이 씁니다. 한없이 이어져 저물 줄 모르는 긴긴 하루의 증거로서 씁니다. 그런 기분에 잠긴 저를 두 사람에게 소개하기 위해 씁니다. 또한 그 기분을 스스로 음미해보기 위해 씁니다. 해는 깁니다. 사위는 매미 소리에 파묻혔습니다. 이상.

1916년 8월 21일, 구메 마사오·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보낸 편지

서두르면 안 됩니다. 머리를 너무 괴롭혀서도 안 됩니다.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끈기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불꽃 앞에서는 짤막한 기억밖에 허락하지 않습니다. 끙끙대며 죽을 때까지 밀어야 합니다. 그뿐입니다. 절대 상대를 만들어서 밀면 안 됩니다. 상대는 끝도 없이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는 법이니. 소는 초연히 밀고 갑니다. 무엇을 미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답해드리지요. 인간을 미는 겁니다. 문사文士를 미는 것이 아닙니다.

1916년 8월 24일, 구메 마사오·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보낸 편지

지은이 | 나쓰메 소세키

본명 나쓰메 긴노스케. 1867년, 도쿄 신주쿠구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마쓰야마와 구마모토에서 교편을 잡았다. 1900년, 문부성으로부터 2년간의 영국 유학을 명받고 유학길에 오르나, 영문학에 대한 회의감과 고독감으로 극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렸다. 귀국 후 생계에 대한 압박으로 신경 쇠약이 악화되던 중 기분 전환을 위해 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가 뜻밖의 큰 인기를 얻으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도련님》(1906), 《풀베개》(1906)를 연이어 발표하며 단숨에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1907년, 마흔의 나이에 교직을 떠나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하여 전업 작가로 집필에 매진하게 된다. 《그 후》(1909), 《문》(1910), 《마음》(1914) 등의 작품을 인기리에 연재하며 승승장구하지만, 거듭 재발하는 위병과 신경 쇠약으로 몸져눕는 일이 많았다. 결국 《명암》을 연재 중이던 1916년, 위궤양 악화로 대량 출혈 후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12월 9일 오후, 가족과 친구,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유작이 된 《명암》은 미완 상태로 188회에서 연재가 중단되었다.


옮긴이 | 김재원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뒤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다카하시 도시오의 《호러국가 일본》(공역), 다자이 오사무 전집 중 《유다의 고백》, 《생각하는 갈대》, 사이토 다마키의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우치다 햣켄의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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