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Peter Handke)

오스트리아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번역가이자 시인. 독일어와 슬로베니아어를 함께 쓰는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그라츠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중 1966년 《말벌들》이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출간되면서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프린스턴 대학에서 열린 ‘47 그룹’에 초청된 자리에서 기존 문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이름을 알린다. 그 해 출간한 《관객모독》과 이듬해 출간한 《카스파》를 통해 ‘언어극’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전개해 나갔다. 또한 시집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 소설 《소망 없는 불행》과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일기를 묶은 《세계의 무게》 등 개인적 체험을 반추하며 자기를 찾는 시도를 이어갔으며 빔 벤더스와 함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프리드리히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

1770년 3월 20일 독일 서남부의 작은 마을 라우펜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친아버지와 의붓아버지를 모두 잃고 홀어머니의 소망에 따라 성직자 과정을 밟았다. 헤겔, 셸링과 동급생으로 튀빙겐 신학교를 마친 뒤 성직자의 길을 거부하고 시인의 길을 걸었다. 창작에 열중하는 한편, 성직 복무 의무를 피하며 생계를 도모하기 위해 독일의 여러 지역과 스위스, 프랑스를 전전하며 가정교사로 일했다. 1802년 봄 보르도를 떠나 10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서 귀향한 뒤 정신착란의 징후를 보였다. 1806년 튀빙겐의 아우텐리트 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고, 1807년 기껏해야 3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퇴원하여 오늘날 ‘횔덜린트름’이라 불리는 튀빙겐의 옥탑방에서 정신착란자로 36년을 살다가 1843년 6월 7일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는 동시대인인 괴테, 실러의 그늘에 가려 수수한 문명文名으로 만족해야 했으나 20세기 초 헬링라트, 니체, 릴케 등에 의해 독일 현대 시의 선구자로 재평가받았다. 〈반평생〉, 〈빵과 포도주〉, 〈평화의 축제〉 등 많은 서정시와 소설 《휘페리온》, 미완성의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을 남겼고, 소포클레스의 비극, 핀다로스의 승리가 등을 독일어로 옮겼다. 〈판단과 존재〉, 〈종교론〉, 〈소멸 중의 생성〉과 〈비극적인 것에 관하여〉 등 철학과 문학에 대한 에세이를 비롯해 시인의 고뇌와 환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300여 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학업을 그만두고 인쇄소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이후로는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교사가 되었으며, 5년간 학교에서 일한 뒤 언론사에서 활동하며 시와 소설을 썼다. 1841년 《프랭클린 에반스》, 1842년 《한 아이의 챔피언》 등 소설을 발표하며 《뉴욕 오로라》의 편집자로 일하던 시기에 랠프 월도 에머슨의 ‘자연과 시인의 능력’이라는 강연에 감명받아 자유시 형식의 시 쓰기에 전념한다. 1855년 7월, 제목 없는 열두 편의 시를 실은 《풀잎》 초판을 자비로 출판했는데, 에머슨이 이 시집을 극찬하여 시인으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휘트먼은 《풀잎》을 생명력과 민주주의에 대한 찬양을 담은 ‘아담의 아이들’, ‘창포’, 남북 전쟁의 경험을 담은 ‘북소리’, 해변과 바다의 시들을 담은 ‘해류’ 등의 여러 ‘덩어리cluster’로 나누며 ‘임종판deathbed edition’이라 불리는 1891~1892년 판본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쳐 수정과 증보를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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