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 옮긴이 박술
  • 원제 Die Kriegstagebücher
  • 발행일 2022년 9월 2일
  • 판형 152×223mm
  • 면수 424쪽
  • 정가 22,000원
  • ISBN 9791189433574
  • 전자책 미출간

책 소개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불태우지 못한 일기
전 세계 최초 완역 합본
《논리철학논고》 집필 과정이 담긴 사유의 궤적
전쟁의 포화 속에서 조우하는 이론과 실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전쟁 일기》 개정판이 읻다의 철학 시리즈 ‘착상’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이 1차 세계 대전 참전 중에 기록한 일기장 세 권을 엮은 것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및 베르겐 대학교 문헌보관소의 협조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완역 합본이다. 당시 비트겐슈타인은 일기장의 왼쪽 면에는 사적 내용을, 오른쪽 면에는 철학적 내용을 기록했는데, 왼쪽 면의 〈사적 일기〉는 독일에서조차 완역하지 않고 편집 후 발간했을 정도로 은밀한 내면까지 담고 있다. 그러나 〈사적 일기〉에 기록된 비트겐슈타인의 일상이나 감정은 단순한 개인적 기록의 성격을 넘어, 그가 전쟁터에서 직면한 사건들이 추상적, 철학적인 문제의식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궤적을 보여준다. 오른쪽 면의 〈철학 일기〉는 후일 러셀이 《논리철학논고》 검토 및 서문 작성에 참고 자료로 삼았을 만큼, 이러한 문제의식이 《논리철학논고》의 ‘지적’들로 형성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따라서 〈사적 일기〉와 〈철학 일기〉의 병행 편집으로 구성된 《전쟁 일기》는 초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풍부한 전기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자, 《논리철학논고》의 파편적 서술들을 연결지을 길잡이가 된다. 특히 〈철학 일기〉에는 《논리철학논고》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대목에 해당 지적의 번호를 표기하여 독자가 두 책을 서로 참조하며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지금 나는 거대한 발견에 이르는 길목에 서 있다.”
적군의 포격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발견하다

“내 작업은 논리의 기초에서 시작하여 세계의 본질까지 확장되었다.”

1916년 8월 2일 일기 중에서

1차 세계 대전 참전은 비트겐슈타인의 일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유럽의 최상류 사회를 누비던 도련님은 금욕적인 구도자가 되어 미증유의 철학서 《논리철학논고》와 함께 돌아왔다. 막대한 상속금은 형제들에게 전부 나눠주었고, 철학계에서도, 빈 사교계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 대체 전쟁터에서 그는 무슨 일을 겪은 것일까? 가족의 증언처럼 전쟁을 겪으면서 성인(聖人)이 된 것일까? 아니면 러셀이 말했듯 신비주의자로 전락한 것일까? 수학 기초론과 논리학에 국한되어 있던 그의 사유가 전쟁을 거치면서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등의 영역을 아우르는 위대한 철학의 반열에 올라선 것만은 사실이다. 그 스스로도 이 기간의 정신적 여정이 “논리의 기초에서 시작하여 세계의 본질까지 확장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젊은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을 이해하는 일은 그가 치른 전쟁을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진짜 전쟁은 이제 시작될 것이다. 그와 함께 삶도 시작될지 모른다! 어쩌면 죽음과의 가까운 거리가 삶의 빛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신께서 내게 깨달음을 주시길!”

1916년 5월 4일 일기 중에서

전쟁 발발 당시 비트겐슈타인은 대학을 졸업한 상태였기에 일반병 징집 대상이 아니었고, 단년 복무 후 소위로 임관될 수 있었음에도 이등병으로 입대하기를 택했다. 가족의 죽음을 비롯해 러셀 및 무어와의 학문적 결별, 제도권 학계와의 불화 등으로 실존적 절망과 철학적 난관에 부닥치자, 새로운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자신을 전쟁터로 내던진 것이다. 전장에서 그는 함께 생활하는 동료들과 불화를 겪으면서 타자와 세계의 존재를 온몸으로 직면하고, 죽음이 목전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숱하게 통과하며 실존에 관한 깊은 통찰에 도달한다. 종전 무렵에는 오스트리아군의 퇴각과 함께 이탈리아 전선에서 포로가 되고, 포로수용소에서는 참전 중에 써둔 노트를 바탕으로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한다. 이어 이 작은 책 한 권으로 철학의 모든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는 결론을 내린 뒤 학계를 떠난다. 《논리철학논고》는 논리를 통해 세계 전체를 파악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그러한 시도가 갖는 한계에 대한 인식이기도 한데, 이는 그가 몸소 겪은 전쟁의 참상과 윤리적 문제가 결코 논리적으로 파악될 수 없는 대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쟁 일기》의 이중 집필 체계에서 삶의 영역과 철학의 차원이 병존하면서 ‘말할 수 있는 것’과 침묵 사이의 미세한 균형점을 향해 수렴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발설과 침묵, 암호와 기호 사이에서 그려낸
언어와 세계, 논리의 본질에 관한 지도 조각들
실존적 고뇌와 철학적 사유의 가장 밀접한 만남

참전 시기 비트겐슈타인에게 가장 중요한 대화 상대는 몇 권의 책과 일기장이었다. 이들은 험난한 일상 속에서도 내면을 보존하고, 철학적 사유 속에 머물도록 하는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그는 톨스토이, 니체, 에머슨을 탐독하는 한편, 일기장 왼편에는 암호로 일상을 기록하고 오른편에는 《논리철학논고》의 초고를 써나간다. 이러한 암호화 기제는 철학적 사유를 심화하는 과정과 주위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과정이 상당 부분 일치했음을 시사한다. 발설과 침묵, 암호와 기호 사이에서 고뇌하던 그에게 ‘문장이 사태를 표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와 같은 물음은 훨씬 더 실존적인 층위에 있었을지 모른다.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동안 비트겐슈타인은 인생의 목표와 행복에 관한 성찰에 몰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 죽음, 삶의 목적, 종교, 유아론, 도덕 등 가장 심오한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지적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이 시기는 그의 일생에서 보기 드문 폭발적인 영감과 통찰의 시간으로, 그간 침묵으로 일관했던 대상들에 대한 거침없는 사유를 보여주며 《논리철학논고》의 형성 및 그의 인생 전체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철학으로 승화되었으며, 그렇게 성립된 철학은 죽음의 공포를 무력화한다. 이 시기부터 철학적 내용과 사적 내용의 엄격한 분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비트겐슈타인은 ‘나’를 철학의 대상으로 삼으며 실존적 고뇌와 논리적 사유라는 두 영역을 화해시키고, 하나의 체계로 엮어내고자 결심한다. 이는 철학에서 이론과 실존이 조우하여 종교적·비의적 인식을 향하는 보기 드문 지점이다.

“행복한 자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죽음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세계의 사실들 중 하나가 아니다.”

1916년 7월 8일 일기 중에서

이후부터는 사적 일기의 기록이 거의 정지하는데, 이는 비트겐슈타인이 실존적 고뇌를 철학적 사유와 융합하여 삶과 철학이 동떨어진 두 가지의 대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즉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철학관은 논리학에 대한 형식적인 사유에서 출발하여, 죽음의 경험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적 층위와 결합되었다. 따라서 《논리철학논고》의 형성 과정은 고통받는 인간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서로 만나고 화해하는 과정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논리철학논고》에 대한 해석의 지평은 비트겐슈타인의 삶의 궤적 및 텍스트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확장될 수 있으며, 반대로 인간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이해 역시 그의 이론적·개념적 사유에 대한 연구를 통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전쟁 일기》는 이 두 방향 모두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차례

편집 의도
서문

전쟁일기
— 사적 일기
— 철학 일기

해제
옮긴이의 말


책 속에서

지금 나는 거대한 발견에 이르는 길목에 서 있다. 하지만 내가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 바깥은 얼음장같이 춥고 폭풍이 몰아친다. 나는 바닥에 밀짚을 깔고 자며, 조그만 목제 상자 위에서 읽고 쓴다(가격: 2.50 크로넨).

14년 9월 5일

가장 작업을 잘할 수 있는 때는 감자를 깎을 때다. 나는 항상 이 일에 자원한다. 나에게 있어서 감자를 깎는 일은 스피노자가 렌즈를 깎던 일과도 같다. (…) “정신이 곁을 지키는 자라면……” ———! 신이 나와 함께하시길! 이제 죽음과 눈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고결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겠다.

14년 9월 15일

나는 한 시간 후에 죽을지도 모르고, 두 시간 후에 죽을지도 모르고, 한 달 후나 아니면 몇 년 후에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죽음을 알지 못하며, 그것에 대항하거나 준비하기 위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이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존립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좋음과 아름다움 속에서 사는 것이다. 삶이 스스로 멎는 순간까지.

14년 10월 7일

나는 다음 문장들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직 사물들만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세계가 정확히 하나의 사물로만 이루어져 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 하나의 사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러셀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의 사물이 있다면, 함수 (∃x) ξ̂=x도 존재한다고. 하지만!—

14년 10월 13일

나는 대상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 그것들을 발설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장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그러면서 대상도 아닌 것)이 있을 수는 없는가?” 그런 것이야말로 언어를 통해서는 표현될 수 없을 것이며, 그것에 대해 질문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사실들 바깥에 무언가가 있다면 어떤가? 문장들이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 우리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은 표현하지 않는다—그리고, 표현될 수 없는 것이 과연 표현될 수 있는지를 어떻게 질문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들 바깥의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는가?

15년 5월 27일

단어들은 깊은 물 위를 덮고 있는 피부와도 같다.
명료한 것은, ‘문장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 ‘사실이란 무엇인가’ 또는 ‘복합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같은 지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15년 5월 30일  

내가 쓰고 있는 모든 글은 하나의 거대한 문제에 대한 것이다: 세계에는 선험적 질서가 있는가? 만약 질서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너는 안개 속을 쳐다보면서 목표가 가깝다고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개가 흩어지고 나면 목표는 시야에 들어와 있지도 않은 것을!

15년 6월 1일  

인생의 목적과 신에 대해 나는 과연 무엇을 아는가?
나는 이 세계가 있음을 안다. 
마치 눈이 시야 안에 있듯이, 내가 그 안에 있음을 안다.
우리가 세계의 의미라고 부르는 어떤 것이 문제적임을 안다.
이 의미가 세계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음을 안다.
삶이 곧 세계임을 안다.
내 의지가 세계를 관통함을 안다. 

16년 5월 25일 / 6월 11일

행복한 자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죽음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 속에서 살지 않고, 현재 속에서 사는 자만이 행복하다.
현재를 사는 삶에는 죽음이 없다.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세계의 사실들 중 하나가 아니다.
영원을 무한히 지속되는 시간이 아니라 비시간성으로 이해한다면, 현재 속에서 사는 자가 영원히 산다고 할 수 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나는 세계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행복하다”는 말의 의미다.

16년 7월 8일

역사가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내 세계가 최초의 세계이며 유일한 세계인데!
나는 내가 세계를 어떤 모습으로 발견했는지를 서술할 것이다.

16년 9월 2일

예술 작품이란 영원의 관점으로sub specie aetenitatis  바라본 대상이다. 그리고 좋은 삶은 영원의 관점으로 바라본 세계다. 이것이 예술과 윤리의 연결 지점이다. 
평범한 관찰 방식은 대상을 (말하자면) 그 한가운데에서 바라보고, 영원의 관점에서의 관찰은 대상을 바깥에서 바라본다. 
그리하여 세계 전체를 배경으로 삼는다.

16년 10월 7일

지은이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1911년부터 버트런드 러셀과 교류하며 논리학과 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 대전 참전 중에 《논리철학논고》(1921)를 집필하고, 철학의 모든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했음을 선언한 뒤에 학계를 떠났다. 192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돌아와 평생 철학을 가르쳤으며, 1951년 사망했다. 논리학, 수리철학, 심리철학, 언어철학 분야에서 《철학적 탐구》(1953)를 비롯한 많은 저작을 유고로 남겼다. 작품과 삶에서 드러나는 실존적 자세, 완벽주의, 독특한 성격으로 철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폭넓은 영향을 끼쳤으며, 20세기 이후의 철학에 가장 강력한 흔적을 남긴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옮긴이 | 박술

유년을 독일에서 보내고 뮌헨 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육군사관학교 철학과 조교수로 근무했으며, 힐데스하임 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 《시와 반시》 신인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전쟁 일기》, 니체의 《비극의 탄생》(공역),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철학 파편집》, 트라클의 《몽상과 착란》이 있다.


언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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