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주아·윤진·강민혁·김한결·윤여일·이우창·강초롱·정성욱·현재환·이진이·지영래·편영수·나성인·윤상원·김민철
  • 기획위원 김영욱·박동수·박민아·최화선
  • 발행일 2022년 10월 31일
  • 판형 152×223mm
  • 면수 416쪽
  • 정가 22,000원
  • ISBN 9791189433628
  • 전자책 미출간
  • 정기구독 안내


책 소개

어떤 사람이, 누구의 삶을, 어떻게 쓰는가
삶의 무수한 조각을 기술하는 법

시대와 분과를 가로지르며 최신 이론과 사상의 동향을 소개하는 읻다의 서평 무크지 《교차》 3호 《전기, 삶에서 글로》가 출간되었다. 3호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황제와 영웅에서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 광인과 무명인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삶을 기술해 온 전기(biography) 장르를 고찰한다. 유한한 삶을 글로 기록하여 한 사람과 그가 남긴 것을 기억하려는 노력은 시대와 문화권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글은 과연 한 삶의 양적 방대함과 질적 다층성을 온전히 포착할 수 있는가? 삶의 풍부함과 글의 빈약함을 숙명처럼 맞닥뜨린 전기 작가들은 이 예정된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려 하는가? 우리는 이 실패의 기록들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교차》 3호에 수록된 15편의 서평은 이러한 질문을 마주한 채 각자의 관점에서 전기라는 글쓰기의 가능성과 한계를 묻는다. 

수많은 인간이 있었고, 이들의 삶을 기록한 수많은 글이 있었다.

서문 중에서

3호는 전체 다섯 개 장으로 나뉜다. 전기가 하나의 장르로서 확립된 것은 ‘개인’이라는 근대적 관념이 형성된 17세기 후반이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을 기술하는 글 자체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 늘 존재했다. 첫 장 ‘전기 이전의 전기’는 전기 형태로 된 근대 이전의 저술을 일별한다. 이어지는 네 개 장은 근대 이후의 인물에 대한 전기를 다룬다. ‘사유하는 삶’은 철학자와 사상가의 전기를, ‘삶의 자연 발생’은 과학자 전기를, ‘삶이라는 예술’은 예술가 전기를 살펴본다. 마지막 장 ‘이름 없는 전기’는 앞선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무명인의 삶에 대한 책을 검토한다. 이 전기의 저자들은 위대한 인물의 삶과 유산을 한데 모아 역사를 기술하려 하거나, 특정한 삶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확립하는 한편, 영웅적 천재를 둘러싼 신화를 벗겨내려고도 하며, 학문의 방법론을 실험하기도 한다. 또한 타인의 삶을 연구함으로써 자신을 들여다 보고, 더 나아가 연구 대상의 삶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여 전기의 주인공을 좌절시킨 사회 질서와 맞서기도 한다. 서평자 15인은 이런 시도가 역사학 일반과 사회사, 지성사, 과학사, 미술사, 음악사, 문학, 철학 등 각 학문의 분과에서, 또 전기 장르의 역사에서 무엇을 남겼는지 돌아본다.

위대한 삶의 도열은 역사가 될 수 있는가, ‘전기’ 이전의 전기

동인 작가 주아는 〈동아시아 역사 서술의 질서 정연한 전통〉에서 반고의 《한서 열전》을 사마천의 《사기》와 비교해 살피며, 전한 시대에 동아시아 기전체 역사서의 시초인 《사기》가 탄생하고 《한서》가 이를 계승하여 개인의 일대기를 담은 ‘전(傳)’이라는 장르를 표준화한 과정을 짚어본다. 역사 연구자 윤진의 〈로마 제정기 한 식민지 엘리트의 자기 합리화〉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영웅들의 삶을 비교 서술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특수한 위치로 인한 저자 플루타르코스의 내적 갈등에 주목한다. ‘은행원 철학자’ 강민혁의 〈삶과 로고스가 함께 거주하는 미래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다룬 가장 오래된 철학사 저작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읽으며 삶과 철학의 관계를 성찰한다. 미술사 연구자 김한결은 〈평전은 역사가 될 수 있는가〉에서 미술사라는 학문의 역사를 촉발한 저서인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살피며, 저자가 미술가들의 삶을 연결해 시대의 연속성을 만들고 근대적 미술사의 양식사적 방법론을 예비하며 예술의 진보와 퇴조, 재생이라는 역사적 관점을 빚어내는 방식을 반추한다. 

사유하는 삶, 철학자의 사유 읽기와 삶 읽기

사회학자 윤여일의 〈‘그럼에도’의 생애사, 마르크스와 프루동〉은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의 《카를 마르크스》와 조지 우드코크의 《프루동 평전》을 함께 읽으며, 시대적 부자유 속에서 교차하는 두 혁명가의 행보를 생생히 체감하는 가운데 이들의 사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지성사 연구자 이우창의 〈문인의 글쓰기와 지성사적 전기〉는 제임스 해리스의 《데이비드 흄: 지성사적 전기(Hume: An Intellectual Biography)》를 통해 한 문인의 실체는 그가 쓴 모든 글의 맥락이 지나가는 결절이라 주장하며, 언어맥락주의 모델을 따르는 ‘지성사적 전기’라는 새로운 장르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불문학 연구자 강초롱은 〈철학을 살아내고자 한 철학자, 보부아르〉에서 ‘여자’ 보부아르의 생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그의 지적 업적에 대한 몰이해를 야기했다고 비판하며,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케이트 커크패트릭의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이 어떻게 보부아르를 독자적인 철학자로 재조명하는지 짚어본다. 

삶의 자연 발생, 그리고 발생한 사실의 해석

과학사 연구자 정성욱은 〈20세기 유전학을 비추는 독특한 역사적 렌즈, 바바라 매클린톡〉에서 ‘역사적 사실’의 형성 과정을 질문하며, 생존 인물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집필된 이블린 폭스 켈러의 《유기체와의 교감》을 여성 과학자 매클린톡의 전기인 동시에 20세기 유전학의 모습을 조명하는 역사적 렌즈로 읽어낸다. 과학사 연구자 현재환의 〈비판적 과학자 전기의 가능성과 어려움을 묻다〉는 제럴드 기슨의 논쟁적 저서 《루이 파스퇴르의 사적 과학(The Private Science of Louis Pasteur)》을 통해 과학자를 둘러싼 영웅 신화를 해체하려는 비판적 전기의 흐름을 소개하며, 과학사가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수립되는 과정에서 전기가 어떤 쟁점을 가져왔는지 분석한다. 

삶이라는 예술, 혹은 삶과 예술의 길항 속에서

불문학 연구자 이진이의 〈‘진정한 광인’ 아르토의 반 고흐론, 혹은 잔혹의 시〉는 앙토냉 아르토의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Van Gogh le suicidé de la société)》를 반 고흐가 아닌 아르토의 삶에 초점을 두고 읽으며, 그가 반 고흐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동시대 정신의학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그에 맞설 시적 언어를 지어 올리는 과정 속으로 들어간다. 불문학 연구자 지영래의 〈자아와 타자의 경계에서〉는 사르트르의 방대한 플로베르 전기 《집안의 천치(L’Idiot de la famille)》를 내용과 방법론 면에서 검토하며, 타자에 대한 완전한 앎을 목표로 하고 이를 전유해 자기 인식에 도달하려는 저자의 노력을 고찰한다. 독문학 연구자 편영수의 〈삶의 조각들로 카프카의 삶을 여행하다〉는 카프카의 작품을 ‘위장된 자서전’으로 이해하는 라이너 슈타흐의 카프카 평전 3부작을 경유하여, 여러 카프카 전기의 상이한 시각과 그에 관한 논쟁을 소개한다. 저술가 나성인의 〈음악가의 시민 사회 정착기〉는 엘리자베스 노먼 맥케이의 《슈베르트 평전》, 이성일의 《슈만 평전》과 《브람스 평전》을 함께 읽으며 시민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클래식 음악이 어떻게 시민의 것이 되었는지 살펴보고, 계몽과 혁명의 시기에 사회와 예술가가 동반자적 영향 관계를 맺었음을 주장한다. 

위대할 것 없는 삶의 기록, 이름 없는 전기

철학 연구자 윤상원의 〈규율 권력의 합리성과 광기의 문학 사이에서〉는 19세기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한 존속 살해범 리비에르에 관한 미셸 푸코의 저작 《나, 피에르 리비에르》를 근대성과 광기에 관한 푸코의 연구 속에서 독해하며, 리비에르의 수기 및 정신 감정서의 의미와 관계를 분석한다. 역사 연구자 김민철의 〈19세기 무명씨의 삶: 침묵한 ‘보통 사람’의 흔적을 찾아〉는 지방 문서고의 명단에서 무작위로 골라낸 한 농민의 삶을 추적하려는 알랭 코르뱅의 《루이프랑수아 피나고의 세계를 되살려 내다(Le monde retrouvé de Louis-François Pinagot)》를 소개하며, 어떤 사료로도 포착할 수 없는 민중의 삶을 붙잡으려는 역사가의 실험이 실패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온전한 개인으로 표상되기에는 너무 과도하거나 너무 미약한 존재”를 다룬 이 두 책은 전기 장르의 한계를 성찰하게 한다.

다른 삶을 향하는 일

삶은 텍스트의 구조와 문체와 의미망에 따라 인식된다. 전기는 삶을 글로 옮기는 일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글을 통해 비로소 살게 되는 일이다.

서문 중에서

서문 〈한 인간을 쓴다는 것〉에서 기획위원 김영욱은 전기를 읽고 쓰는 행위의 의미를 질문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고 글로 옮기는 활동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전기의 역사적 변천은 개인과 인간에 대한 입장을 예증하며, 특수한 휴머니즘을 형성한다. 유럽 근대가 쌓아올린 이러한 휴머니즘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가?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앞세우고 투명한 이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전기는 고리타분한 휴머니즘의 전유물이며, 말하자면 극복되어야 할 인류세의 문학이다.” 그러나 전기란 본질적으로 나와 다른 존재를 발견하고 그것을 규정하려는 노력이며, ““인간”이란 이 존재에 붙여진 잠정적 이름일 뿐이다.” 다가올 시대에 “다음 인간, 다음 무엇인가의 형상”을 우리에게 인식시키는 것 또한 새로운 전기일 것이다.

시대와 분과를 가로지르는 지식의 교차로
읻다의 본격 서평 무크지 《교차》

2021년 읻다에서 창간한 서평지 《교차》는 연 2회 발행되며, 학술서를 중심으로 국내외 여러 분야의 책을 다룬 10여 편의 서평을 수록한다. 각 서평은 학술지 논문에 준하는 분량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책의 논지와 이를 둘러싼 맥락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자신의 해석을 개진하여 오늘의 연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시대의 분기점이 된 고전과 최신의 연구를 종횡으로 오가며 교차점을 모색하고, 오래된 질문과 참신한 사유를 지금 여기의 문제와 연결 짓기 위한 가능성의 지평을 탐색한다. 이로써 책을 통해 축적된 사유가 서평을 매개로 맞부딪치는 지적 교류의 장을 지향한다. 


차례

서문

김영욱 • 한 인간을 쓴다는 것

전기 이전의 전기

주아 • 동아시아 역사 서술의 질서 정연한 전통 • 《한서 열전》

윤진 • 로마 제정기 한 식민지 엘리트의 자기 합리화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강민혁 • 삶과 로고스가 함께 거주하는 미래의 철학 •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김한결 • 평전은 역사가 될 수 있는가 •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사유하는 삶

윤여일 • ‘그럼에도’의 생애사, 마르크스와 프루동 • 《카를 마르크스》·《프루동 평전》

이우창 • 문인의 글쓰기와 지성사적 전기 • 《데이비드 흄》

강초롱 • 철학을 살아내고자 한 철학자, 보부아르 •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

삶의 자연 발생

정성욱 • 20세기 유전학을 비추는 독특한 역사적 렌즈, 바바라 매클린톡 • 《유기체와의 교감》

현재환 • 비판적 과학자 전기의 가능성과 어려움을 묻다 • 《루이 파스퇴르의 사적 과학》

삶이라는 예술

이진이 • ‘진정한 광인’ 아르토의 반 고흐론, 혹은 잔혹의 시 •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

지영래 • 자아와 타자의 경계에서 • 《집안의 천치》

편영수 • 삶의 조각들로 카프카의 삶을 여행하다 • 《카프카: 초기 시절》·《카프카: 결정의 시절》·《카프카: 통찰의 시절》

나성인 • 음악가의 시민 사회 정착기 • 《슈베르트 평전》·《슈만 평전》·《브람스 평전》

이름 없는 전기

윤상원 • 규율 권력의 합리성과 광기의 문학 사이에서 • 《나, 피에르 리비에르》

김민철 • 19세기 무명씨의 삶: 침묵한 ‘보통 사람’의 흔적을 찾아 • 《루이프랑수아 피나고의 세계를 되살려내다》


책 속에서

고유한 활동으로서 전기는 인간이 삶과 글 사이에 본질적 관계를 설정한 문화의 산물이다. 이 문화 속에서 형성된 인간이라면 망각과 죽음으로 떨어지는 삶을 글로 가로채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것을 완전히 터득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단지 살기만 했다면 삶을 느끼지도,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삶은 텍스트의 구조와 문체와 의미망에 따라 인식된다. 전기는 삶을 글로 옮기는 일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글을 통해 비로소 살게 되는 일이다. 쉽게 쓴 이 문장이 얼마나 많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함축을 지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 개인으로서 인간을 앞세우고 투명한 이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전기는 고리타분한 휴머니즘의 전유물이며, 말하자면 극복되어야 할 인류세의 문학이다. 그런데 다음 인간, 다음 무엇인가의 형상은 전에 보지 못한 전기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전기의 원리는 나와 다른 존재를 발견하고 그것을 규정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이 존재에 붙여진 잠정적 이름일 뿐이다.

김영욱, 〈한 인간을 쓴다는 것〉(17-18쪽)

《사기》와 《한서》는 처음부터 서로 비교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20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자 문화권의 지식인들은 사마천과 반고를 ‘반마’로 병칭하며 두 사람의 저작을 함께 논했다. […] 유진옹(1231-1294)이 《반마이동평》(반고와 사마천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한 평론)에서 문학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했다. 유진옹은 《사기 열전》에서 사마천이 허구의 내용을 동원해서까지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해 낸 것을 칭찬했고, 명 왕조의 지식인들도 같은 기준으로 《사기》를 문학의 모범으로 삼았다. 한편 청나라 때 고증학이 성행하면서 《한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다시 늘어났다. 조선 시대 정조(재위 1776-1800)의 경우 《사기》와 《한서》를 여러 번 읽기를 추천하면서도 모두 “《한서》는 끝내 법도에 매였기 때문에 문자 이외에는 여지가 보이지 않아 호탕하고 준결한 사마천과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지식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달랐고, 그에 따라 《사기》와 《한서》중에서 어느 쪽을 더 높이 평가할지도 바뀌어 왔다. 평가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지만, 모두 《사기》와 《한서》가 다른 역사서를 압도할 만큼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주아, 〈동아시아 역사 서술의 질서 정연한 전통〉(39-40쪽)

책에 나열된 미술가들의 삶은 피렌체, 이탈리아, 나아가 인류 문명에 관여하는 모든 예술 창작의 발전 서사와 관계 맺는다. 미켈란젤로에게로, 더 나아가 그 추종자인 바사리에게로 나아가는 미술의 전진은 완벽한 미적 이상을 ‘다시금’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피렌체 예술의 역사는 그 ‘선례precedents’를 구성하는 각 미술가 개인의 서사로 촘촘히 짜여 있다. 독자는 미술가들 삶의 연속으로부터 시대의 연속성을 확인한다. 바사리는 예술의 탄생, 진보와 퇴조 그리고 재생이라는 역사적 관점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평전을 시대 순으로 나열하면서 그 안에서 생성된 크고 작은 계보들을 다룸으로써 ‘유파’라는 개념이 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또한 이것이 이후 미술사의 주요 방법론인 양식사와 맺는 관계를 예보하고, ‘유형’의 역사를 엿보게 하기도 한다. 요컨대 바사리의 평전에서 서술의 대상이 된 인물 각자는 미술의 근본이 되는 법칙들을 되살리려는 근대인들의 집단적 노력 안에서 나름의 역할을 맡는다. 이처럼 바사리에게 평전은 ‘시대의 질서’, ‘양식들maniere의 질서’를 구현하는 도구다.

김한결, 〈평전은 역사가 될 수 있는가〉(102-103쪽)

《데이비드 흄》은 흄의 저술 활동을 18세기 영국 독서 공중의 변화라는 맥락과 연결한다. 문예 시장의 성장과 함께 부와 명예, 정치적 독립성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새로운 저자 유형이 등장했다. 새로운 문인들에게는 영국, 나아가 유럽의 교양 독자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서술 방식이 필요했다. 흄은 그 가능성을 재빠르게 포착한 저자였다. “동료 전문가들을 위해서만 글을 쓰는 전문가”로 남는 대신 그는 독자와 “대화”할 수 있는 서술 방식을 추구했다. […] 해리스는 한편으로 영국 문예 시장의 변화라는 한층 구체적인 문맥을 통해 흄이 한 명의 저자로서 어떠한 정체성을 선택했는지를 질문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의 저작이 어떠한 스타일을 구사하는지에도 주목한다. 해리스의 책은 단순히 포브스와 필립슨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이전의 해석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도입한다. 흄은 철학자, 정치 이론가, 역사가 중 어느 한가지 길만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문인으로서 그는 스스로의 관심사와 재능, 그리고 독자들의 흥미가 허락하는 한 어떠한 장르에서든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이우창, 〈문인의 글쓰기와 지성사적 전기〉(159-160쪽)

《유기체와의 교감》은 옥수수 유전학자 바바라 매클린톡의 일대기를 담은 전기이지만, 동시에 과거인과 역사가의 능동적인 상호 작용이 어떻게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기도 하다. 매클린톡과 켈러의 관계에서 ‘과거인과 역사가의 대화’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였다. 켈러가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 매클린톡은 아직 생존해 있었을 뿐 아니라, 8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지속하던 현직 유전학자였다. 그는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켈러에게 자신이 여성 과학자이자 옥수수 유전학자로서 겪어온 20세기 유전학계의 모습, 그가 일궈낸 주요 연구 성과들, 옥수수라는 생명체를 이해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 등 그의 삶, 주변, 그리고 연구 방법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매클린톡과의 대화는 책을 구성하는 중심 뼈대가 되었으며, 나아가 20세기 유전학을 바라보는 켈러의 독특한 관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유기체와의 교감》은 매클린톡의 전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책에 담긴 매클린톡의 삶과 경험은 켈러와 독자에게 20세기 유전학계의 감춰진 이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특수한 역사적 도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정성욱, 〈20세기 유전학을 비추는 독특한 역사적 렌즈, 바바라 매클린톡〉(201쪽)

이전 전기들보다 기슨의 책이 급진적으로 나아간 부분은 파스퇴르 과학 연구의 비도덕적 측면들을 드러내고 (여러 조건과 단서를 달면서도 지속적으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처럼 과학자 일반에 대한 상을 재고하는 일을 넘어 전기 서술의 대상이 되는 과학자가 연구를 추진하게 된 숨겨진 동기나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들, 혹은 실수들을 찾아내 밝히는 폭로적debunking, 혹은 비판적 전기 서술은 전문 과학사 저작 가운데에서는 상당히 드문 편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적 전기 서술 때문에 기슨의 《사적 과학》은 책 곳곳에서 조심성을 엿볼 수 있음에도 1990년대 초중반 당시 미국 학계에서 일어나고 있던 과학자들과 인문사회학자들 사이의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파스퇴르에 대한 어떤 폭로가 문제가 되었을까? 그리고 논쟁 중에 제기된 기슨의 분석에 대한 비판이 모두 정당했을까?

현재환, 〈비판적 과학자 전기의 가능성과 어려움을 묻다〉(237-238쪽)

아르토의 이 작품은 작가가 글쓰기의 대상이 되는 인물로부터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그 인물의 생애를 재구성함으로써 해당 인물에 대한 안정적이고 공신력 있는 이해를 도모하는 평전의 일반적 양식에서 번번이, 동시에 멀찍이 빗나간다. 비어가 반 고흐 개인의 역사를 정신 질환의 병리적 계기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면, 아르토는 이 화가에 대한 정신의학적 판단과 규정, 나아가 정신의학의 권위와 사회 구조 자체를 근본부터 재론한다. 비어라는 의사와 반 고흐라는 환자 사이의 좁힐 수 없는 수평적, 수직적 간극도 아르토와 반 고흐라는 두 광기의 예술가 사이에서는 가뿐히 무시된다. 아르토 선집의 책임 편집자 에블린 그로스만은 《반 고흐》에서 “아르토는 스스로를 반 고흐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미치광이 반 고흐’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이 글쓰기를 견인하는 아르토의 동력이 반 고흐를 대상화하는 태도가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반 고흐와의 동일시를 넘어선 동화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아르토가 반 고흐에게 최대치로 가까이 다가가 동화되는 듯 보이는 순간에도 반 고흐는 아르토와 꽤나 닮았지만 그럼에도 절대적으로 타자인 채 분신double처럼 그의 주위에 출몰한다. 

이진이, 〈‘진정한 광인’ 아르토의 반 고흐론, 혹은 잔혹의 시〉(260-201쪽)

사르트르는 《집안의 천치》에서 자신이 그리고자 한 것이 “있었던 그대로의 플로베르”가 아니라 그가 “상상한 대로의 플로베르”였다고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들에게 자신의 ‘플로베르’를 한 권의 “진짜 소설”로 읽어달라고 주문하기까지 한다. 《집안의 천치》는 전기이자 소설이고 자서전이다. 소설과 전기와 자서전의 경계를 허무는 이 책에서는, 한 자아가 타인의 이야기의 그물 속에서 가려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진실’이라는 특수한 효과가 솟아난다. ‘사르트르화된’ 플로베르는 분명 ‘진짜’ 플로베르도 아니고 ‘정확한’ 플로베르도 아니지만, 이 플로베르를 통해서 모든 객관적인 해석의 틀이 무너지고 사르트르와 플로베르가 결합한 하나의 진리가 나타난다.

지영래, 〈자아와 타자의 경계에서〉(312쪽)

20세기 중반부터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기치로 삼은 사회사가들은 이른바 노동 계급의 언어, 여성의 언어, 소외된 자들의 문학을 연구했지만 그중 누구도 사료의 발생 기제로부터 거리를 두고 살았던 저 많은 “민중”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그 민중이 19세기의 격변들과 하층 계급의 투사들을 바라본 관점을 복원해 낼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과연 노동 계급이나 여성이나 그밖에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한” 작가나 운동가 들을 통해 민중의 모습을 밝혀낼 수 있을까? 코르뱅은 이런 의문을 품고 자신의 고향 오른도道의 문서고에서 무작위로 작은 코뮌 하나를 골라서, 그 주민들 중에서 둘을 무작위로 고르고, 둘 중 19세기에 걸쳐 더 긴 생을 살았던 인물을 연구 대상으로 선택했다. 이 인물은 한편으로는 어떤 방식으로도 범상치 않은 기록을 남긴 적이 없는 사람이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손들에게도 완전히 잊혀 흔적이 모두 사라진 사람이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선택된 인물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나막신 제작자 피나고였다.

김민철, 〈19세기 무명씨의 삶: 침묵한 ‘보통 사람’의 흔적을 찾아〉(398-399쪽)

지은이

주아 
취미로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를 읽고 팬픽션과 자료집을 쓰는 동인 작가. 학부와 대학원에서는 언어학을 공부했다. 전4사와 《열녀전》, 《세설신어》 등을 비롯한 고중세 중국어 데이터에서 호칭어가 사용되는 양상을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윤진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논문 20여 편을 썼고,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 및 아리아노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기》 등 4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스파르타인, 스파르타 역사》를 비롯한 3권의 책을 썼다.

강민혁
《자기배려의 책읽기》, 《자기배려의 인문학》의 저자. 학교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배우고 사회에 나와 회사에 다니고 있으나, 삶의 어느 순간 철학을 접하고 불현듯 읽고 쓰는 다른 삶이 포개졌다. 미셸 푸코 등 현대 정치 철학을 동력 삼아 철학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김한결
프랑스에서 서양 근세 미술사와 박물관사를 공부했고, 현재는 미술품 컬렉션사와 미술 저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18세기 전후 미술 작품이 수집과 취향의 역사를 거쳐 지식의 영역에 편입하게 된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윤여일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로 베이징에서, 도시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교토에서 체류했으며, 제주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물음을 위한 물음》, 《광장이 되는 시간》,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동아시아 담론》,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를 쓰고, 대담집 《사상을 잇다》를 펴냈으며,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전2권), 《일본 이데올로기》,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어느 방법의 전기: 다케우치 요시미》, 《사상이 살아가는 법》, 《조선과 일본에 살다》, 《재일의 틈새에서》, 《사상으로서의 3·11》,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을 옮겼다.

이우창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새뮤얼 리처드슨과 초기 여성주의 도덕 언어〉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8세기 영국의 지성사와 문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문화와 담론, 인문학 연구 방법론, 고등 교육 제도 개선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논문으로 〈헬조선 담론의 기원〉, 〈영어권 계몽주의 연구의 역사와 “잉글랜드 계몽주의”의 발견〉 등이 있고, 리처드 왓모어의 《지성사란 무엇인가?》를 번역했으며, 그 외 여러 매체에 기고했다. 블로그(begray.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강초롱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파리 7대학교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자서전 담론〉으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는 〈진실‘들’을 드러내는 은밀한 목소리: 『초대받은 여자』의 주변인물 연구〉, 〈어머니를 위한 애도의 두 가지 전략: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과 에르노의 『한 여자』 비교〉, 〈자유와 상황의 충돌의 재현: 『레 망다랭』의 다성화 전략〉 등이, 옮긴 책으로는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이 있다.

정성욱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과학기술사 및 철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하버드 부시연구소(Bussey Institution)를 중심으로 20세기 미국 유전학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현재환
한양대학교에서 역사와 철학, 과학기술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UCLA 사회와 유전학 연구소 방문연구생, 도쿄 이과대학교 공학부 일한문화교류기금 박사후연구원, 독일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학의 초국적 성격이 20세기 이후 한국과 일본의 인간 생물학 및 환경 과학과 관련된 실천 및 제도 수립에 끼친 역할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마스크 파노라마》(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유전의 문화사》가 있다.

이진이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파리 대학교(구 파리 7대학교)에서 사뮈엘 베케트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불가능한 목소리》(공저)가 있다.

지영래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집안의 천치: 사르트르의 플로베르론》, 《실존과 참여》(공저), 《사르트르의 미학》(공저) 등을 쓰고, 《사르트르의 상상력》, 《닫힌 방·악마와 선한 신》을 번역했다.

편영수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카프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LG 연암문화재단 해외 연구 교수로 선발되어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전주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프란츠 카프카와 관련된 다수의 논문, 번역서, 저서를 발표했다. 2018년 막스 브로트의 카프카 평전 《나의 카프카》 번역으로 한독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독일어권에서 생산되는 문학 및 문화와 관련된 책에 흥미를 가지고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성인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독일 시를 전공한 뒤 예술 가곡 분야의 코치 및 공연 기획자로 활동했다. 인문학과 클래식의 만남에 주목하여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베토벤 아홉 개의 교향곡: 자유와 환희를 노래하다》, 《하이네. 슈만. 시인의 사랑》, 《슈베르트 세 개의 연가곡: 사랑과 방랑의 노래》, 《베토벤 현악 사중주》, 옮긴 책으로 율리우스 베르거의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 등이 있으며, 부정기 예술 무크지 《풍월한담》의 편집을 맡고 있다.

윤상원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8대학교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철학 서점 소요서가를 운영하는 연구소오늘의 대표로 일하며, 칸트와 푸코 철학의 관계를 중심으로 프랑스 인식론의 ‘비판성’을 추적하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프랑스 철학자란 무엇인가?》(근간)가 있다.

김민철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프랑스 혁명사와 지성사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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