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박연준·김성중·정용준·은모든·예소연·김지연
  • 발행일 2023년 11월 27일
  • 판형 130×200mm
  • 면수 208쪽
  • 정가 16,800원
  • ISBN 9791193240151
  • 전자책 미출간

책 소개

“계속 씹으면 봄이 올 것 같고 더 오래 씹으면 꽃도 필 것 같다.
창밖, 여전히, 고요히, 어쩌면 영원히, 눈이 쏟아지고 있다. ”

환하고 묵묵한 날에 무엇을 드시나요?
소설(小雪)의 계절에 찾아온
온기 나는 간식과 여섯 편의 이야기
《겨울 간식집》 문 활짝 열었습니다!

시절이 변해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겨울의 풍경들을 모은 《겨울 간식집》이 읻다에서 출간되었다. 한국 문학의 장을 풍성하게 채우는 이름들, 박연준, 김성중, 정용준, 은모든, 예소연, 김지연 작가는 저마다 또렷한 작품세계처럼 다채로운 간식들을 하나씩 골라 꺼내어 놓는다.

겨울은 화려한 거리의 풍경을 뒤로하고 의뭉스러운 이들과 적적한 연말을 보내거나(〈귤락 혹은 귤실〉), 동상이몽의 가족 모임에서 벗어나 아늑한 얼굴들을 찾아 연시를 맞이하는(〈모닝 루틴〉) 도피의 계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면했을 많은 기회를 되새기며(〈포토 메일〉), 켜켜이 쌓인 추억과 영원의 다른 이름을 들여다보는(〈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 회고의 계절. 곁과 마음에 자주 타인이 머무는 이 계절에 우리는 영영 놓아버린 관계를 더듬어보거나(〈한두 벌의 다른 옷〉),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의 안녕을 빌어보기도 한 (〈겨울 기도〉). 그리고 익숙한 모양새로 우리 앞에 놓일 간식들은 그 모든 풍경을 소환할 것이다.

빨갛게 끓인 과일과 낯선 향이 걷힌 자리
박연준, 〈한두 벌의 다른 옷〉

‘나(여름)’는 10년 전 콜센터에서 일하며 친구 성희와 시를 배웠던 과거를 떠올린다. 시에 대한 진심은 수면 아래 둔 채 “시는 나중에 ‘진짜 소설’을 쓸 때 도움이 될까 싶어 배우는 것”이라고 서로와 자신을 속이던 나날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나’는 성희의 소개로 ‘진짜 부자’, ‘진짜 문학도’라는 들뜬 소문과 신비감에 휩싸여 있는 인물 영혜의 작업실을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영혜가 끓여준 뱅쇼에서는 향기인지 악취인지 모를 냄새가 나고. 낯선 장소, 낯선 향, 낯선 사람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나는 두근거리며, 냄새의 원인인 팔각을 몰래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 속이 알 수 없는 붉음으로 물들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박연준 작가의 〈한두 벌의 다른 옷〉에서는 일상의 구원을 바라며 “타인은 아름다워”라고 말하는 순간, 끓는 순간 휘발되기 시작하는 어떤 마음의 핍진한 여로가 펼쳐진다.

귤에 붙은 하얀 실의 이름은 귤락
김성중, 〈귤락 혹은 귤실〉

속초로 휴가를 떠나온 ‘나(‘결코’)’는 우연히 발견한 에스프레소 바의 단골이 된다. 그런데 이 카페에 드나든 지 한 달쯤이 지난 어느 날부터 한 청년이 자꾸 “그런데요”라며 말을 걸어온다. 인사도 맥락도 없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 청년을 ‘그런데요’라고 부르기로 하고, ‘나’는 그의 이야기에 ‘결코’ 대꾸하지 않는다. 그때 카페 사장이 나 대신 ‘그런데요’의 말에 응답하고, 나는 늘 다정한 태도를 잃지 않는 사장을 ‘언제나’로 부르기로 한다. 밤의 거리가 환해지는 연말, 저마다 독특한 사연을 가진 ‘그런데요’와 ‘언제나’ 그리고 ‘결코’는 “캐럴과 알전구와 견디기 힘든 낙관주의의 습격으로부터 도피해” 엉뚱한 내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귤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먼저 귤을 까는 것. ‘나’는 누군가 귤실이라고 말할 때마다 귤락이 바른 표현이라고 정정한다. 취한 채 귤락 혹은 귤실을 까며 세 남자는 숨김없는 속내를 털어놓게 되는데. 김성중 작가의 〈귤락 혹은 귤실〉은 사소한 일탈을 꿈꾸는 독신자들의 휴일 한때의 풍경을 재치 있게 그려낸다.

넘치게 붓고 단단한 눈덩이처럼 동그랗게
정용준, 〈겨울 기도〉

“흥분하고, 좌절하고, 자기애로 충만했다가 곧바로 자괴감으로 무너지는 몸과 마음”의 스무 살, 신경. 학교도 나가지 않고 연락도 두절한 채 한 고시텔에 숨게 된다. 학교 조교와 함께 고시텔을 찾은 엄마는 시종일관 짜증을 내는 딸 신경에게 직접 잡은 문어가 담긴 아이스박스를 건네고 떠난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고시텔 관리인은 아이스박스를 버리려던 신경을 제지하고, 그 속에 든 문어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문어가 삶아지는 고소한 냄새에 고시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105호 여자는 다코야키를 만들어 신경에게 나누어준다. 다코야키를 먹으며 의식하지도 못했던 허기를 든든히 채우게 된 신경은 105호를 따라 다코야키를 만들게 되는데.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스무 살은 혼란한 마음을 어떻게 가누어야 하는지. 정용준 작가의 〈겨울 기도〉는 넘치고 성근 마음들을 한데로 모아 동그랗게 말아내는 겨울날의 작은 도약을 그린다.

기다리는 마음으로 빚다 보면 어느새 쌓이는
은모든, 〈모닝 루틴〉

간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설날의 아침, 은하와 민주는 스트레칭을 하며 느긋한 오전 시간을 보낸다. 껄끄러운 친척들을 만나지 않고, 기름 냄새에 시달리며 억지 미소를 짓는 노동에서 해방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으나,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자 명절 음식이 떠오른다. 허기를 대충 때운 채 고른 영화를 보다가 졸기를 반복하고 있던 민주와 은하에게 가족 모임에서 뛰쳐나온 성지가 명절 음식을 한 아름 들고 찾아온다.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만두를 빚는 설날. 만두피에 속을 넣는 것처럼 그 시간은 둘러앉은 사람들의 대화로 채워진다. 은하는 설날마다 늘 애정 어린 말을 건네던 생전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돌아오지 않을 풍경을 그리워하고, 성지는 쏟아지는 무신경한 질문 세례에 명절 탈출을 꿈꾼다. 이 또한 끝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화를 삼키던 성지를 기어코 눈물짓게 만든 조카의 한마디. 그런 성지를 환대하고 아늑한 도피처가 되어준 은하와 민주. 각자 다른 경험을 갖고 있지만, 같은 곤경을 공유하는 셋의 설 풍경은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현실로 다가온다.

넓고 둥근 호떡의 앙금은 팥이 아니라 설탕
예소연, 〈포토 메일〉

예소연 작가의 《포토 메일》은 모여 있던 사람들의 훈기가 빠져나간 곳에 남은 이들의 풍경을 포착했다. 동생 재하가 떠난 뒤 3년간 찾지 않는 집에 둘이 남아 내밀한 신경증을 공유하는 ‘나’와 할머니. 어느 겨울밤, ‘나’는 애인 희민과 오래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케이드에 간다. 쇠락한 그곳에서 둘은 수상한 전자 매장에 들러 호떡을 먹는 두 아이의 대화를 VR 영상으로 감상하게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호떡에 든 앙금이 팥인 줄 알고 호떡을 먹지 않았던 영상 속 아이처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외면했을 아주 많은 기회”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동생 재하보다 더 가족처럼 살갑게 할머니와 ‘나’의 곁을 지키는 희민의 무구함을 바라볼 때마다 왜 마음이 술렁일까? 희민에게 마음에도 없는 가시 돋친 말을 던지는 ‘나’의 얼굴은 할머니의 얼굴과 어딘가 닮아 있을 것이다.

유리병 속 켜켜이 포개진 달고 신 기억들
김지연,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

새벽 어스름의 희부연 안개가 드리운 유자밭에서 ‘나’는 땅에 파묻혀 있던 타임캡슐을 발견한다. 그리고 함께 유자를 따고 있던 삼촌과 ‘파도’라는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을 황급히 부르는데. 삼촌은 교통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었고, 파도의 사장은 남편과 사별했다는 비슷한 과거를 가졌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사장과 삼촌의 태도는 어딘가 다르다. 타임캡슐을 열자 온통 썩어 문드러진 쓰레기 사이로 공벌레가 기어 나온다. 세 사람은 카페 파도에 모여 직접 딴 유자로 유자청을 담그기로 하고, 나는 섵탕에 포개어져 겨우내 썩지 않을 유리병 속 유자를 보며 영원의 의미를 잠시 헤아려본다. ‘나’의 마음을 모두 꿰뚫어 보는 것처럼 능청스럽고 늘 숨김없는 태도로 불쑥 다가왔던 숙모. 나는 언젠가 우연히 들었던 숙모의 한마디를 기억한다. “사는 게 너무 달아…….”

추신. 어떻게 하면 겨울을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매번 새로운 추위를 선사하는 겨울, 각 소설의 끝에는 이 계절을 잘 지내는 여섯 작가만의 방법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집에서, 바깥에서, 혼자 혹은 반가운 이들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음악과 간식을 곁에 두거나 미뤄왔던 대화와 일을 굴려가며 우리에게 다가올 추위를 마주해 보자.


차례

박연준
한두 벌의 다른 옷 • 7
겨울 레시피| 눈송이처럼 떠도는 마음 부르기 • 37

김성중
귤락 혹은 귤실 • 41
겨울 레시피| 겨울 (낮)잠 • 37

정용준
겨울 기도 • 71
겨울 레시피| 바깥에서 바깥 보기 • 103

은모든
모닝 루틴 • 105
겨울 레시피| 올해의 발견 • 131

예소연
포토 메일 • 135
겨울 레시피| 불쌍히 여기지 않기 • 37

김지연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 • 171
겨울 레시피| 밤밤 • 205


책 속에서

나는 몰래 과일 더미를 헤집어 팔각을 찾아냈다. 시뻘겋게 엉긴 것들 사이에 숨은 꼭짓점이 여덟 개인 진짜 별. 여전히 딱딱하고 따뜻했다. 키친타월로 팔각의 물기를 닦아내고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이 알 수 없는 붉음으로 물들 것 같았다.

박연준, 〈한두 벌의 다른 옷〉 중에서

할 수 있는 건 한없이 귤락을 벗기는 것뿐. 벗기면서 생각했다. 귤락은 귤을 보호하고 있다고. 드림캐처가 나쁜 꿈을 걸러내듯이 귤락이 과육을 지키고 있는지도 몰랐다.

김성중, 〈귤락 혹은 귤실〉 중에서

과하게 구워져 초콜릿처럼 보이는 동그란 다코야키 위에 데리야키소스와 마요네즈가 뿌려져 있었다. 제법 그럴듯했다. 한 알을 집어 입에 넣었다. 맛은 다코야키인데 식감은 다코야키가 아니었다. 튀김에 가까웠다. 하지만 좋았다. 문어는 너무 컸고 너무 많았다. 그것 역시 좋았다. 고소하고 달콤한 맛. 씹으면서 알게 됐다. 나, 배가 고팠구나.

정용준, 〈겨울 기도〉 중에서

파래김의 구수한 향이 퍼진 국물 먼저 한 입 먹고 만두를 베어 물 때면 “그거 한 그릇 다 비워야 한 살 더 먹는다. 천천히 많이 먹어”라면서 뿌듯한 미소를 짓던 할머니. 어린 시절에 은하는 떡만둣국을 다 비워서가 아니라 할머니의 그 말 덕분에 비로소 한 살 더 나이가 드는 것처럼 느꼈다.

은모든, 〈모닝 루틴〉 중에서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주 많은 기회를 외면했을 거야.”

“무슨 말이야?”

“호떡에 든 앙금이 팥인 줄 알았던, 그 애처럼 말이야. 호떡이 뭔지도 모르고 호떡을 외면해 온 거잖아.”

예소연, 〈포토 메일〉 중에서

다들 신이 나서 많이 웃었고 유자청을 병에 넣을 때 그 웃음소리도 함께 넣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했던 것은 기억난다. 그 웃음들. 달고 새그럽고 따뜻하고……. 유자차를 마실 때마다 나는 매번 새롭게 그 맛에 놀라며 헛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김지연,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 중에서

지은이 | 박연준

지은 책으로 소설 《여름과 루비》, 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 동화 《정말인데 모른대요》,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모일》 《쓰는 기분》 《고요한 포옹》 등이 있다.

지은이 | 김성중

지은 책으로 소설 《개그맨》 《국경시장》 《이슬라》 《에디 혹은 애슐리》가 있다.

지은이 | 정용준

지은 책으로 소설 《가나》 《바벨》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프롬 토니오》 《유령》 《이코》 《세계의 호수》 《내가 말하고 있잖아》 《선릉 산책》 《저스트 키딩》, 동화 《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 산문집 《소설 만세》가 있다.

지은이 | 은모든

지은 책으로 소설 《애주가의 결심》 《꿈은, 미니멀리즘》 《안락》 《마냥, 슬슬》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오프닝 건너뛰기》 《우주의 일곱 조각》 《선물이 있어》 《감미롭고 간절한》 《한 사람을 더하면》이 있다.

지은이 | 예소연

지은 책으로 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이 있다.

지은이 | 김지연

지은 책으로 소설 《빨간 모자》 《마음에 없는 소리》 《태초의 냄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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