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Peter Handke)

오스트리아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번역가이자 시인. 독일어와 슬로베니아어를 함께 쓰는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그라츠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중 1966년 《말벌들》이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출간되면서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프린스턴 대학에서 열린 ‘47 그룹’에 초청된 자리에서 기존 문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이름을 알린다. 그 해 출간한 《관객모독》과 이듬해 출간한 《카스파》를 통해 ‘언어극’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전개해 나갔다. 또한 시집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 소설 《소망 없는 불행》과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일기를 묶은 《세계의 무게》 등 개인적 체험을 반추하며 자기를 찾는 시도를 이어갔으며 빔 벤더스와 함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폴 발레리(Paul Valéry)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세트에서 나고 자랐으며 해양대학에 입학하려다 포기하고 몽펠리에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부터 앙드레 지드와 말라르메 등과 교우했는데 스물이 채 되지도 않은 나이에 이미 문학가로서 필력을 인정받았다. 법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892년, 감수성의 혁명을 겪는다. 이 사건이 발레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고, 이를 계기로 스물네 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Introduction à la méthode de Léonard de Vinci〉(1895)과 자신의 이름을 프랑스 문단에 각인시킨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La soirée avec monsieur Teste〉(1896)을 세상에 내놓는다. 1897년부터 1917년까지 이십 년 동안 문학적 칩거에 들어가 정신의 내적 기능을 연구하고 자신의 잠재 지성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며 대외적 작품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러한 침묵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계속되었으나, 1917년에 〈젊은 파르크La Jeune Parque〉를 발표하며 인생에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이하고 유럽 전역에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청년 시절에 쓴 시들을 《옛 시 모음집Album de vers anciens》(1920)으로 묶고, 〈해변의 묘지〉, 〈나르시스 단장〉 등을 한데 모아 《매혹Charmes》(1922)으로 출간했다. 《바리에테》, 《외팔리노스》, 《드가, 춤, 데생》 등을 발표하며 평생 문학인으로 살다 1945년 생을 마감했다. 사후작으로는 《나의 파우스트》 등이 있다.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1899년 프랑스의 도시 몽펠리에에서 태어나 개신교 부르주아 가문에서 자랐다. 1916년 루이-르-그랑에 들어가 인문학을 공부했으며, 1917년부터 법학과 철학 공부를 병행하였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합격하였으나, 구두 면접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음으로 탈락하고야 만다. 1차대전이 끝날 무렵 사회주의 당원으로 활동하고, 1937년에 공산당원으로 가입하여 10년간 당원 신분을 유지한다. 주요 저서로는 첫 시집 《사물의 편Le parti pris des choses》을 비롯해 《프로엠Proêmes》, 《표현의 광란La rage de l’expression》, 《비누Le savon》 등이 있다. 1988년 프랑스의 도시 바르- 쉬르 – 루에서 생을 마감했고 1999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그의 전집을 간행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년 독일 뢰켄에서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스승 리츨의 추천으로 25세에 바젤 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쇼펜하우어 철학과 바그너 음악에 경도되어 《비극의 탄생》(1872), 《반시대적 고찰》(1873~76)을 집필하면서 철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바그너와의 결별 이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9~80), 《서광》(1881)을 통해 독자적 사유를 모색하였으며, 1881년 실스 마리아에서의 체험 이후 《즐거운 학문》(188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85), 《선악 너머》(1886), 《도덕의 계보》(1887), 《적그리스도》(1888), 《이 사람을 보라》(1889), 《우상의 황혼》(1889) 등의 저작을 쏟아내면서 인간의 문명과 심리를 파훼한 철학자로 우뚝 섰다. 1889년 정신적 붕괴를 맞고 병상에서 지내다 1900년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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