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장 스타로뱅스키
  • 옮긴이 김영욱
  • 발행일 2023년 3월 24일
  • 판형 152×223mm
  • 면수 208쪽
  • 정가 20,000원
  • ISBN 9791189433772
  • 전자책 출간 예정


책 소개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적 맥락과 현재적 의미를 탐문하는
서양 정신의학사의 기념비적 저작

스위스의 문학비평가이자 의학사가인 장 스타로뱅스키(Jean Starobinski, 1920-2019)의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가 읻다의 의학사 시리즈 ‘척도와 구성’ 두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1959년 로잔대학에서 발표한 의학 박사학위 논문을 이듬해 출판한 것으로, 이후에 저자가 문학비평가이자 관념사가로서 작성한 글들과 나란히 2012년 《멜랑콜리의 잉크L’Encre de la mélancolie》에 수록되었다. 

인간의 깊은 근심과 고통의 한 형태로서의 멜랑콜리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의학, 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탐구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멜랑콜리가 인간을 잠식시키는 질병인 한, 치료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스타로뱅스키는 흑담액을 배출함으로써 치료를 꾀했던 고대부터 신경성 원인에 집중했던 근대에 이르기까지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를 정리하고 분석하여 멜랑콜리가 한 시대를 규정하는 특수한 정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 현상임을 밝힌다. 

불행에 고착된 인간에게 삶의 의지를 돌려주려 한 오랜 노력
실패한 의학의 역사와 인간학적 진실

멜랑콜리는 검은 담액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melancholia’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는 곧 흑담액과 그 파생물 혹은 파생관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고대인들은 비애와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안에 흑담액이 흐른다고 상상했다. 과거 의학계는 흑담액은 혈액, 황담액, 점액과 마찬가지로 몸의 자연적 체액을 구성하는 요소로, 흑담액의 과잉이나 질적 손상이 생길 때 멜랑콜리가 발현된다고 보았다. 이 문화적 상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치료법으로 하제를 이용하여 흑담액을 몸에서 배출시키거나 물리적 화학적 작용으로 흑담액에 작용하는 방법들을 고안해 냈다. 멜랑콜리를 검고 질척이며 부식되는 흑담액이라는 액체로 표상하는 관습은 일견 보편적이고 타당해 보인다. 이 내적인 논리가 지니는 보편성과 타당성으로 인해 멜랑콜리는 인간에 대한 유럽적 사유를 이루는 주요 전통이 되었다. 그러나 흑담액 이미지에 기초한 의학적 처치들이 비과학적인 의학의 관성이라는 손쉬운 결론에 도달해서는 안 된다. 같은 처방의 반복일지라도, 처방의 근거를 통해 질병에 대한 각 시대 고유의 해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사를 수놓은 의학사, 
의학사에 아로새겨진 문학사
멜랑콜리를 설명하는 문학과 의학이라는 양대 축

장 자크 루소에 대한 문학 박사학위 논문과 멜랑콜리 치료사에 대한 의학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한 후 문학 연구의 길을 택한 스타로뱅스키의 지적 여정은 이 책을 이해하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에서 의학사상가와 더불어 몽테뉴, 라퐁텐, 볼테르, 루소, 괴테, 보들레르에 이르는 수많은 문학가들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타로뱅스키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주요 의학사상가들과 문학가들을 거론하며, 유럽 문화와 문학에 깊이 뿌리내린 멜랑콜리와 정신의학의 사유를 추적한다. 이 책은 일견 겸손한 의학서를 자임한 듯 보이지만,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문학사와 의학사에 양분함으로써 폭넓은 통찰을 제공한다. 즉, 저자는 문학사를 검토하며 멜랑콜리가 좁은 분과의 대상이 아니라 고대부터 이어진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일반적 문제임을 밝힌다. 동시에 이 이해 불가능한 유한성을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인위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관계로 구조화함으로써 의학의 지위를 지정하고 문학과 의학사의 내재적인 관련성을 검토한다. 

멜랑콜리 역사가 아닌,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 

본질적으로 이 책이 전제하는 것은 멜랑콜리의 역사가 아니라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이며, 멜랑콜리라는 정신의 상태를 신비화하지 않고, 그에 수반되는 인간의 작은 노력들을 강조한다. 가령 중세 의사 아프리카인 콘스탄티누스의 멜랑콜리 치료제 제조법에서 아페리티프 레시피를 발견하고, 괴상한 예술혼과 정신이상자들에 대한 지배욕을 ‘사이코드라마’로 실현하는 사드와 그에 당황하는 사회를 목격하자면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소상한 노력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인 멜랑콜리는 초월적 저주가 아니라 병의 형태로 현상하는 본질이며, 바로 이때 우리는 언어와 문화적 상징으로 대응하는 인간적 노력을 맞세울 수 있다. 

차례

2012년 서언·모리스 올랑데 
2012년 서문
서문 

고대의 권위자들 
호메로스 
히포크라테스 저작 
켈수스
에페소스의 소라노스 
카파도키아의 아레테오스 
갈레노스 
철학자의 개입 

전통의 무게  
‘나태’의 죄악 
힐데가르트 폰 빙엔 
아프리카인 콘스탄티누스 
르네상스
체기
잔존
시드넘
프리드리히 호프만 
안샤를 로리 

근대 
새로운 개념 
피넬과 에스키롤 “정신적 치료” 방법 
회전
여행
온천
음악
가족요법
유전을 막을 수 있을까? 
혁신과 실망 
1900: 의학적 조력과 잠정적 한계

1960년 박사논문의 참고문헌

옮긴이 주

옮긴이 해제·멜랑콜리, 은폐된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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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에스키롤은 광기가 “문명의 병”이라고 즐겨 말했다. 실제로 인간의 병이 자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환자는 병을 겪지만, 또한 병을 구성하거나 주변으로부터 수용한다. 의사는 병을 생물학적 현상으로 관찰하지만 병을 분리해 명명하고 분류하면서 그것을 관념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는 병을 통해 과학이라는 집단적 여정의 특정 계기를 표현한다. 의사의 측면에서나 환자의 측면에서나 병은 문화적 사실이며, 문화적 조건과 함께 변화한다. 

<서문>, 13쪽

중세부터 은자는 “멜랑콜리 기질” 혹은 이와 같은 것인 ‘토성의 아이들’을 표상하는 알레고리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한편으로 멜랑콜리 기질은 관조와 지성적 활동의 성향을 유발한다. 이때 멜랑콜리는 특권이지 병이 아니다. 다른 한편 긍정적 영향과 긴밀하게 얽힌 위험이 도사린다. 관조적 인간은 ‘나태’의 폐해에 취약하다. 중세 예술가 대부분은 죄악과 육체적 질병을 신학적으로 구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흑담액의 어두운 영역에 ‘나태’의 상징을 등장시킨다. 

<전통의 무게_’나태의 죄악’>, 55쪽

고전적 멜랑콜리 요법의 알레고리적 가치를 생각해 보면 왜 그것이 그토록 오래 신뢰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치료는 상상력에 매우 중요한 만족을 제공한다. 하제를 쓰는 것은 ‘해방libération’의 몽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강장제”는 몸을 ‘되살리며restaurer’, 용해제는 인체 내 체액의 ‘통일성homogénéité’을 복구하고, 안마와 마사지는 사지를 ‘온순하게 만든다assouplir’. 이 모든 작업 각각은 정신적 등가물을 가지며, 어쩌면 정신적 등가물을 유도한다. [···] 배출제, 용해제, 강장제를 사용해서 사실상 환자가 병의 표상을 “신체화”하도록, “카타르시스”와 정신적 재건 과정을 몸으로 흉내 내도록 강제했다. 아마도 이 방법이 몇몇 성공 사례를 내놓았기에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그토록 주기적으로 전승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통의 무게_잔존>, 76쪽

회전기계는 유럽의 모든 병원에서 성공을 거둔다. 하인로트는 경미한 멜랑콜리의 경우 기분전환과 여행을 추천하는 것에 그친다. 그래도 자신 안에 침잠한 환자가 “내리누르는 힘”에 굴복하여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때는 ‘선반’ 사용을 권한다. 회전기계는 일종의 자극제다. 이를 통해 하인로트는 쇠약해진 “수용성”을 복구하기를 원한다. 인도적 수단으로만 개입하려는 프랑스 정신의학자들조차 이 치료법에 매혹되어 다윈의 방법에 따라 환자를 회전시킬 것이다. 

<근대_회전>, 116쪽

하지만 전근대 의학의 멜랑콜리 치료가 신체에 대한 자연학적 작용만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로뱅스키는 추론에 의해서든 경험에 의해서든 이미 고대 의사들이 “진정한 정신요법”을 물질적 치료와 통합했음을 관찰한다. 그들은 사려 깊은 방식으로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환경을 고려하면서 환자의 자아를 수정하고 보강할 줄 알았다. 손쉬운 격려부터 오락과 여행, 음악과 작문까지 이 방면에서도 처방전은 얼마든지 길다. 흑담액 가설의 지배하에서 이 치료법들은 근대 정신의학의 여러 “정신적 치료”, 관념과 감정에 작용하려는 기법들을 예고한다. 

옮긴이 해제, 195쪽

중요한 것은 최초의 흑담액이 이미 상상의 물질이고, 여러 경험이 “압축”된 “이미지”였다는 사실이다. 스타로뱅스키는 이 이미지의 힘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흑담액 이미지는 개인과 개인의 근심이라는 인간학적 진실을 지시하기에 충분히 보편적이며, 이러한 진실에 대한 유효한 “현상학적” 탐구로 간주될 정도로 충분히 타당하다. 홀로 있을 수밖에 없으면서 그러한 존재 방식의 모든 고통을 떠안은 멜랑콜리의 인간을 검고 질척이며 부식시키는 액체에 잠긴 것처럼 보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지각과 언어, 사유방식을 지배하고 있다. 이 보편성과 타당성으로 인해 멜랑콜리는 인간에 대한 유럽적 사유를 이루는 주요 전통이 되었고, 흑담액 이미지에 기초하여 구상된 의학적 처치들은 어느 정도 유용성을 갖게 된다. 

옮긴이 해제, 197쪽

지은이 | 장 스타로뱅스키

스위스의 문학비평가, 의학사가, 관념사가. 제네바에 정착한 폴란드 출신 의사 부모에게 태어나 1948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58년부터 1985년까지 제네바대학에서 관념사와 프랑스문학을 강의했다. 1957년 출판된 그의 문학 박사학위 논문이 현대 비평과 루소 연구의 고전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이다. 1960년에는 의학 박사학위 논문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를 펴낸다. 문학과 정신의학, 계몽주의와 멜랑콜리는 유럽 문화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주요 관념들과 단어들의 역사를 섬세한 시선으로 추적할 긴 지적 여정의 상수이다. 한국에서 그는 김현의 《제네바학파 연구》(1986) 이후 특정 문학 학파 일원으로 거론될 뿐이었으며, 2010년대가 되어서야 단 두 권의 저서가 번역되었다.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그리고 관념사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자유의 발명 1700~1789/1789 이성의 상징》이 그것이다. 스타로뱅스키는 당대 유럽의 혁신적인 비평론, 문화연구, 철학, 의학사, 지성사의 대가이지만, 그 자신의 대표작이나 대표적인 주장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의 작업이 타자와 텍스트에 의식을 열고 그 운동의 모든 정교함을 우아한 문체로 기술하려는, 이론가에게 찾아보기 힘든 넉넉함을 체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개방하고 일부를 내어줌으로써 함께 풍요로워지는 태도의 역사와 의미를 유럽 문학과 예술 텍스트를 통해 탐사하는 《넉넉함Largesse》(1994)은 바로 그의 내면적이고 학문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옮긴이 | 김영욱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부교수. 장 자크 루소를 중심으로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철학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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