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미야자와 겐지
  • 옮긴이 정수윤
  • 원제 春と修羅
  • 발행일 2022년 12월 9일
  • 판형 115×190mm
  • 면수 428쪽
  • 정가 15,000원
  • ISBN 9791189433611
  • 전자책 epub

책 소개

일본 환상 문학의 대가, 미야자와 겐지가 남긴 유일한 시집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담긴 《봄과 아수라》 개정판 출간

〈은하철도 999〉의 원작으로 널리 알려진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쓴 작가 미야자와 겐지. 그가 생전에 자비로 출판했던 유일한 시집 《봄과 아수라》가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었다. 개정판에는 시집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겐지의 고향 이와테현의 지명과, 시 두 편 〈아오모리 만가〉와 〈오호츠크 만가〉의 여행 동선을 짚어볼 수 있는 지도가 함께 추가되었다. 

은하계 전체를 ‘나’라고 느끼며

현실과 환상을 언어로 스케치하다.

이 시들은 스물두 달이라는 / 과거로 감지된 방향으로부터 / 종이와 광물질 잉크를 엮어 / (전부 나와 함께 명멸하고 / 모두가 동시에 느끼는 것) / 지금까지 이어온 / 빛과 그림자 한 토막씩을 / 그대로 펼쳐놓은 심상 스케치입니다 

〈서〉 중 일부

‘심상 스케치’라는 시어에서 알 수 있듯이 시집에 실린 예순아홉 편의 시는 시인의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여러 가지 생각, 눈앞에 펼쳐진 자연 풍경 등을 보이는 대로 그린 그림과 같다.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서술은 마치 순간적인 크로키처럼 바람에 흩날리듯,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봄과 아수라》에서 겐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의 모든 것(살아 있든 그렇지 않든, 혹은 눈에 보이든 그렇지 않든) 사이에 작용하는 현상을 관찰하여 언어적 스케치로 펼쳐 보인다.

동화작가이자 농업학교 선생이었던 미야자와 겐지
그의 여러 삶이 시 하나에 녹아들다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은 그의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려서 자연 속을 뛰놀며 식물과 곤충 채집, 특히 광물 채집에 큰 관심이 있었다. 전당포를 운영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풍족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음에도 집을 나와 자신이 어린 시절 보았던 자연, 그 속에서 공생하는 동식물의 모습, 서로 한데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을 《첼로 켜는 고슈》, 《도토리와 살쾡이》, 《사슴 춤의 기원》 등 여러 편의 동화로 옮겼다.

《봄과 아수라》에는 환상적인 동화를 썼던 겐지의 동화작가로서의 세계관과 상상력이 발휘된 한편, 당시 하나마키 농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가 관심을 두었던 음악과 종교, 화학과 지질학과 기상학과 새로운 농업 기술 등이 그의 예술성과 결합하여 섬세하고 풍부한 어휘로 묘사되어 단어 하나하나 곱씹는 재미가 있다.

그 찬란한 공간 / 위쪽에는 미나리아재비가 피고 / (최상급 buttercup인데 / 버터보다는 유황과 꿀에 가깝습니다) / 아래에는 토끼풀과 미나리가 자란다 / 양철 세공 잠자리가 허공을 날고 / 비는 후드득 소리를 낸다 

〈휴식〉 중에서

바람과 편백나무의 이른 오후에 / 오다나카는 몸을 쭉 펴고 / 있는 힘껏 손을 뻗어 / 회색빛 고무공 빛의 표본을 / 미처 받지 못하고 툭 떨어뜨렸다 

〈잔디밭〉 중에서

이 현상의 세계 속에서 / 미덥지 않은 그 성질이 / 이렇게 아름다운 이슬이 되거나 / 움츠러든 작은 참빗살나무를 / 다홍색에서 부드러운 달빛색으로 / 호화로운 직물처럼 물들이기도 합니다 / 이제 아까시나무도 뽑아냈으니 / 만족한 마음으로 곡괭이를 내려놓고 / 나는 기다리던 연인을 만나듯 / 여유롭게 웃으며 나무 밑으로 향하나/ 그것은 하나의 정염 / 이미 물빛 과거가 되었습니다 

〈과거정염〉 중에서

특히 현실과 환상이 얽히고설키고 삶과 죽음이 자유롭게 대화하며 세상 모든 존재가 서로를 인식하고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시집 곳곳에 깔려 있다. 하나의 우주 속에서 모든 존재가 동등하며 나에게 녹아들기도 하고 또는 내가 녹아들기도 한다. 선명하게 반짝이는 자연의 모든 풍광이 고요한 눈으로 들어가 작가의 내면을 휘돌아 독특한 언어로 내뱉어진다. 그 과정에서 불교와 밀접했던 겐지의 삶 또한 어우러졌을 것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다시 삶으로,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다

행복하고 환상적인 그의 작품에도 현실에 대한 고민과 슬픔이 내재해 있다.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제국주의 때문에 점차 인류애와 평화에 대한 목소리가 사라지는 일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겐지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그에 따른 심경의 변화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집을 떠나 동화 창작에 몰두하던 겐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도시코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에 돌아왔고, 농업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농민들의 가난한 삶과 고충을 피부로 느꼈다. 특히 그의 여동생, 도시의 죽음을 다룬 시에서 쓰리고 안타까운 그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새처럼 다람쥐처럼 / 너는 숲을 그리워했다 / 얼마나 내가 부러웠을까 / 아아 오늘 안으로 멀리 떠날 나의 누이여 / 너는 정말로 혼자서 갈 셈이니 / 나에게 같이 가자 부탁해 다오 / 울며 내게 그리 말해다오

〈솔바늘〉 중에서

어째서 저기 저 두 마리 새는 / 저리도 구슬프게 우는 것일까 / 나를 구원할 힘을 잃었을 때 / 나의 누이도 함께 잃었다 / 그 슬픔 때문에 (…) 그 슬픔 때문에 / 정말이지 저 소리도 슬프게 들린다

〈흰 새〉 중에서

스물넷 나이에 스러진 여동생 도시를 떠올리는 겐지의 마음과 펜 끝에는 한없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듯하다. 그 무거운 한숨을 이전처럼 덤덤하게 표현하려 해도 끝내 “무성통곡”처럼 터져 나오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겐지는 그의 마음에 응어리졌던 슬픔을 여동생 도시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계속 흘러간다. 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처럼, 화산 폭발로 죽어버린 땅에도 파릇한 새싹이 다시 돋아나는 것처럼 삶과 죽음은 반복되며 하나의 고리처럼 이어지니 도시의 죽음 또한 “과거의 정염, 물빛 과거”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미야자와 겐지’라는 이름이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로 널리 각인되어 있지만, 생전 출간된 책은 동화 《주문이 많은 요리점》과 시집 《봄과 아수라》뿐이었고, 글을 써서 받은 원고료 또한 5엔이 전부였다. 하지만 겐지는 죽기 직전까지도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았고, 꾸준히 자신의 문체와 표현을 발전시키며 짧은 생애 동안 총 백여 편의 동화와 4백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 해인 1933년에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미야자와 겐지는 세대를 불문하고 가장 많이 읽히고 사랑받는 작가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차례

서 

봄과 아수라
굴절률 
구라카케산의 눈 
일륜과 다이치 
언덕의 현혹 
카바이드 창고 
코발트 산지 
도둑 
사랑과 열병 
봄과 아수라 
봄볕 저주 
지새는달 
골짜기 
햇살과 건초 
구름의 신호 
풍경 
습작 
휴식 
할미꽃 
강가 

진공용매
진공용매 
장구벌레의 춤 

고이와이 농장
고이와이 농장

그랜드 전신주
숲과 사상
안개와 성냥 
잔디밭 
창끝 같은 푸른 잎 
보고 
풍경 관찰관 
이와테산
고원 
인상 
우아한 안개 
전차 
연리지 
하라타이 검무 
그랜드 전신주 
숲의 기사 
전선 수리공 
나그네 
대나무와 졸참나무 
구리선 
다키자와 들판 


히가시이와테 화산
히가시이와테 화산 
개 
마사니엘로 
다람쥐와 색연필 

무성통곡
영결의 아침 
솔바늘 
무성통곡 
바람숲 
흰 새 

오호츠크 만가
아오모리 만가
오호츠크 만가 
사할린 철도 
스즈야 평원 
분화만(녹턴) 

풍경과 오르골
불탐욕계 
구름과 오리나무 
종교풍 사랑 
풍경과 오르골 
바람이 기운다 
스바루 
네 번째 사다리꼴 
화약과 지폐 
과거정염 
잇폰기 들판 
용암류 
이하토브 빙무 
겨울과 은하 스테이션 


*
비에도 지지 않고 
별자리의 노래 

옮긴이의 말 


책 속에서

나라고 하는 현상은 / 가정된 유기 교류 전등의 / 하나의 푸른 조명입니다 / (온갖 투명한 유령의 복합체) / 풍경과 다른 모든 것과 함께 / 조조히 명멸하며 / 잇달아 또렷이 불을 밝히는 / 인과 교류 전등의 / 하나의 푸른 조명입니다 / (빛은 변함없으되  전등은 사라져) 

〈서〉 중에서

창백한 해골 별자리 뜬 새벽녘 / 얼어붙은 진흙의 난반사를 건너 / 가게 앞에 놓인 데바의 꽃병을 훔친 자 / 문득 검고 긴 다리를 멈추고 / 두 손을 두 귀에 갖다 댄 채 / 전선의 오르골을 듣는다.   

〈도둑〉 중에서

진실한 말은 설 자리를 잃고 / 구름은 가리가리 하늘을 난다 / 아아 빛나는 4월의 밑바닥을 이 갈고 성내며 이리저리 오가는 / 나는 하나의 아수라로다 / (광물의 결을 닮은 구름이 흐르고 / 어디선가 우는 봄날의 새)  

〈봄과 아수라〉 중에서

반짝반짝 등을 빛내며 / 있는 힘껏 돌리곤 있지만 / 진주도 실은 가짜 / 유리도 아닌 공기 방울 / (아니요 그래도 / 에이트 감마 이 식스 알파 / 그것도 아라베스크 장식체로) / 수정체와 각막이라는 / 오페라글라스로 들여다보며 / 춤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 진주 거품이 염려된다니 / 너도 아주 편하지는 않겠다

〈장구벌레의 춤〉 중에서

그리하여 앞이 너무 깜깜해진다면…… / 애써 앞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온 힘을 다해 휘파람을 불어라 / 휘파람을 불어라  뒤섞이는 햇살 / 의지할 곳 없는 빛의 파동은 떨리고 / 투명한 것들이 나란히 내 뒤를 쫓는다 / 빛줄기 드리워 다시 노래하듯 작은 가슴을 펴고 / 또 아스라이 반짝이며 웃는다 / 모두 맨발의 아이들이다

〈고이와이 농장〉 중에서

오팔 구름은 아득히 떠가고 / 오리온자리  황소자리  온갖 별자리 / 맑디맑은 밤하늘에 / 더디게 깜박이며 / 나의 이마 위에 빛나네

〈히가시이와테 화산〉 중에서

우리가 천상이라 부르는 불가사의한 방향으로 / 대순환의 바람보다 산뜻하게 올라갔다 / 나는 그 흔적까지 찾아낼 수 있다 / 그곳의 푸르고 고요한 호수를 들여다보며 / 지극한 평온함과 반짝임과 / 미지의 전반사와 / 하염없이 빛나며 흔들리는 나무의 행렬이 / 그대로 비치는 것을 수상히 여기자 / 이윽고 수면이 저절로 빛났다

〈아오모리 만가〉 중에서

한 조각 푸른 하늘이 / 나의 심장을 강하게 찌른다 / 이 두 가지 푸른색은 모두 / 도시코의 특성이다 / 내가 인적 없는 사할린 해안을 / 홀로 걷다 지쳐 잠들 때 / 도시코는 푸른 저편 끝에서 /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오호츠크 만가〉 중에서

우비를 입고 젖은 말에 올라 / 찬 풍경 속  어두운 숲 그늘과 / 완만히 침식된 언덕  붉은 억새 사이를 / 느릿느릿 걸어도 좋고 / 다면각 검정 양산을 펼쳐 들고 / 알사탕을 사러 마을에 가는 것도 / 아주 신선한 계획입니다 / (삐로리리 삐로리리 박새가 우네)

〈불탐욕계〉 중에서

푸른 포옹 운동과 / 밝은 빗속 덧없는 입술이 / 깨끗이 하늘로 녹아드는 / 일본의 9월 대기권입니다

〈네 번째 사다리꼴〉 중에서

하늘에는 티끌처럼 작은 새가 날고 / 아지랑이와 푸른 그리스 글자는 / 눈벌판에 분주히 타오릅니다 / 팟센대로 편백나무에서는 / 얼어붙은 물방울이 찬란히 떨어지고 / 멀리 은하 스테이션에서 보낸 시그널도 / 오늘 아침에는 새빨갛게 가라앉았습니다

〈겨울과 은하 스테이션〉 중에서

나는 기다리던 연인을 만나듯 / 여유롭게 웃으며 나무 밑으로 향하나 / 그것은 하나의 정염 / 이미 물빛 과거가 되었습니다

〈과거정염〉 중에서

비에도 지지 않고 / 바람에도 지지 않고 / 눈에도 여름날 더위에도 지지 않는 / 튼튼한 몸을 지니며 / 욕심이 없이 / 화내는 법도 없이 / 언제나 조용히 미소 짓는다 / 하루에 현미 네 홉과 / 된장과 약간의 채소를 먹으며 / 세상 모든 일을 / 제 몫을 셈하지 않고 / 잘 보고 듣고 헤아려 / 그리하여 잊지 않고

〈비에도 지지 않고〉 중에서

지은이 |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미야자와 겐지는 1896년 헌옷가게와 전당포를 운영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21세에는 문학 동인지를 창간하여 동화를 발표했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전당포에는 가난한 농민들이 가재도구를 가져다 팔았고, 어려서부터 겐지는 그런 농민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일본의 전통시 단가(短歌)를 짓기 시작했으며, 모리오카고등농림학교 농학과에 입학한 뒤부터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많은 동화와 시를 썼으며, 농업에 관한 연구논문도 다수 발표했다. 고향인 이와테 현에서 농민들과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농업에 뛰어들었고, 농업 강의와 벼농사 지도 등 농민 운동을 펼치며 농업학교 교사로 일했다. 그 와중에도 시, 동화 등을 집필하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다. 〈은하철도의 밤〉, 〈주문이 많은 요리점〉, 〈바람의 마타사부로〉, 〈봄과 아수라〉, 〈비에도 지지 않고〉 등 100여 편의 동화와 시를 썼다. 생명 존중 사상을 담은 겐지의 작품은 당시 일본에서는 외면당했고, 그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늑막염으로 생을 마쳤다.


옮긴이 | 정수윤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 시집으로 미야자와 겐지의 《봄과 아수라》, 이바라기 노리코의 《처음 가는 마을》, 사이하테 타히의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고전 시 와카를 엮고 옮긴 산문집 《날마다 고독한 날》과 장편 동화 《모기소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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