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프랑시스 퐁주
  • 옮긴이 이춘우
  • 원제 Le Savon
  • 발행일 2021년 10월 13일
  • 판형 115×190mm
  • 면수 292쪽
  • 정가 13,500원
  • ISBN 9791189433376
  • 전자책 미출간

책 소개

자신을 소진시킴으로써만 자신을 표현하는 ‘비누’에 대한
사물의 시인 프랑시스 퐁주의 집요한 천착

읻다 시인선 11. 조약돌, 빵, 오렌지나 달팽이와 같은 평범한 ‘사물’ 각각을 소재로 오랜 시간 집요하게 관찰하고 묘사하여 완성한 산문시의 모음이 《사물의 편》(1942/2019)이었다면, 《비누》는 비누라는 하나의 사물에만 집중하며 탐구한 퐁주의 작업 노트가 그대로 한 편의 작품이 된 책이다. 1942년 4월 로안에서의 메모 이후, 문서 더미로 쌓이기만 했던 하나의 서류철에서 첫 메모를 시작한 지 25년 뒤, 1967년 갈리마르에서 마침내 책으로 출간되었다. 프랑시스 퐁주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비누》는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다.

하나의 사물에 대해 25년간 반복하고 변주하는 텍스트 
한 권의 책이 된 《비누》

프랑시스 퐁주가 비누를 집요하게 관찰하기 전, 퐁주는 1941년에 쓴 〈루아르 강둑〉에서 자신의 시 쓰기에 대한 입장을 드러낸다. 

나의 작업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위해 내 표현의 지속적인 교정 작업이길 바란다(이러한 표현의 형식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루아르 강둑〉, 1941년 5월 24일, 로안

실제로 시간에 따른 작업에 거의 손대지 않고 고스란히 그 관찰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비누》는 퐁주가 스스로 밝힌 경향성을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언어의 남용과 실험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지는 ‘지적 세척’, 즉 우리 정신의 때를 벗겨줄 ― 수다스럽지만 품위 있고, 무기력하지만 민첩하며, 손에 쥐고 있으면 어쩐지 기분 좋아지는 ― 비누가 돼줄 것이다. 

비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바로 그가 기진맥진할 때까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자신에 대해 말한 모든 것. 

-《비누》 25쪽

돌의 일종, 하지만 자연의 힘이 일방적으로 자신을 주무르게 하지는 않는 돌. 이것은 당신의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와 눈앞에서 녹는다. 

-27쪽

퐁주는 자신의 첫 시집 《사물의 편》의 마지막 시, 〈조약돌Le galet〉에서 자신의 세계 해석 혹은 우주 발생론을 담아낸다. 이 시의 마지막은 조약돌과 물의 대비를 보여주는데, 곧 이어진 작업, 《비누》에서는 물과 상호 작용하는 대상, 비누에 천착한다. 외형적으로는 자그마한 돌과 다름없지만 비누의 ‘이마’는 햇빛에 마르고, 굳어지고, 갈라진다. 근심으로 얼굴이 어두워지고 금이 가더라도 비누는 그렇게 잊힌 채로 비활성 상태에 있어야만 가장 잘 보존된다. 그러다 물을 만나면 비누는 민첩해지고 달변이 된다. 비누는 물과 물리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작’한다. 이때 발생하는 비눗방울은 비누의 침과 격정이며, 곧 비누의 말이다. 

수십 년에 걸쳐 비누를 응시하고, 만지고, 방치하고, 함께 비비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시인의 말 또한 비누 거품처럼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부풀어 올랐다가 되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프랑시스 퐁주는 강연용 원고를 더하거나 희곡으로 설명을 대신하기도 한다. 또한 시각적 텍스트, 일기와 함께 부록에 실린 프로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로 비누에 대한 수사를 시도한다. 

여러 장르로의 언어적 실험  
사물의 특성에 부합하는 글쓰기

“단 하나의 사물에 대해서도 천 가지 필연적 특성의 구성이 가능하다.“

-〈베르나르 그뢰튀젠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비누의 수다를 능가하기 위해 시인은 동원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비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비누가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키면서까지 말하고자 한 것을 시인은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옮긴이 해제 중에서

퐁주는 사물의 특성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퐁주는 사물의 특성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수사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비누를 가장 적합하게 표현하며 비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양식은 차이를 갖는 반복을 되풀이하는 ‘푸가적 글쓰기’이다. 사물에 대한 표현에 있어 모든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말을 연습하는 행위는 언어에 균열을 내고, 언어를 남용하는 일을 수반한다. 이러한 과정은 ‘침묵하는 것도, 기존의 언어를 관례적으로 답습하는 것’도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이 말하는 것, 그것도 새로운 방식으로 많이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옮긴이 해제) 《비누》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실험과 함께 단어의 발음이나 어원 등을 활용해 낯선 조어로 의미와 형태를 동시에 드러내는 시도 또한 만날 수 있다. 


《비누》의 교훈 : 지적 세척과 대상기쁨objoie

“당신은 내게 언젠가 말하길 비누savon라는 말은 ‘앎savoir’이라는 말과 멀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당신이 제안한 지적 세척은 비누를 앎과 소통하게 합니다. 실제로 옛 지식을 씻고, 때 빼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텍스트의 기능에 접근하고자 할 때 우리가 늘 충돌하는 것이 이 옛 지식이죠.“

– 《프랑시스 퐁주와 필립 솔레르스의 대담집》 중에서

비누와의 만남과 모험을 시작하며, 퐁주는 비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다양한 방식으로 말하고 우리 눈앞에서 거품을 만들어 보여주고자 한다. 거품 만들기 연습은 말을 이리저리 연습해보는 행위와 유사하다. 순수함은 침묵이나 자살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말의 연습으로 얻을 수 있다. 이 연습을 통해 우리의 정신은 깨끗해진다. 이것을 퐁주는 ‘지적 세척’이라 부른다. 시인은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변주를 되풀이하면서 우리에게 친숙하고 살을 맞닿아 느끼는 사물인 비누를 통해, 추상적인 세계로 향하려는 지적 경향을 씻어내는 하나의 침례 의식을 유비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반복적인 지적 세척은 타자를 대하는 독자의 정신에 대한 환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우리가 이런 세척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은 《비누》를 따라 읽는 일이다. 

그것은 그러니까 비누가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것, 비누가 다른 것(존재 혹은 사물)과, 결국 다른 대상과 동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동행 덕분에 누구라도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정체성을 비본질적인 자기로부터 떼어낼 수 있으며, 정체성의 때를 제거할 수 있고, 정체성의 그을음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를 의미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대상기쁨 속에서 자기를 영원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의 천국은, 요컨대, 타인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의 낙원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독자여, 여러분의 독서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일 수 있겠는가? (여러분의 독서는 이 마지막 줄에서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부록 5, 손 비비기. – 뭔가로. – 쓰기와 읽기. – 대상기쁨의 도덕 입문. – 책의 끝.〉, 253-255쪽

차례

책의 시작
비누
부록
책의 끝


옮긴이 해제 | 퐁주의 비누의 시학


책 속에서

아! 이 서류-비누, 이 비누-서류, 20년 아니 25년 전부터 이 비누 때문에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몇 분 뒤면 저는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운도 좋지요!).

– 15쪽

여러분은 아마 놀랄 겁니다. 왜냐하면 이 텍스트에는 지루한 반복이 자주 나오는데 이런 것이 문학에서 아주 일반적이지는 않으니까요. 
여러분은 아주 자주 이렇게 지적하실 겁니다. “근데 반복되고 있어! 이건 겨우 몇 분 전에 이미 들었는데!” 
그럼 제가 그것에 대해 변명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그다지 변명하고 싶지는 않군요. 그런데, 이런 기법, 여러분이 음악 분야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러한 방식(그렇지 않나요?), 말하자면 되풀이, 다 카포라는 반복, 같은 주제의 변주, 여러분이 음악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푸가 형태의 작곡, 이런 것들이 문학에서는 왜 금지되어야 하나요?

– 17쪽

비누는 할 말이 많다. 그가 수다스럽게 열정적으로 할 말을 다 했으면 좋겠다. 그가 할 말을 다 했을 때,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1942년 4월, 로안〉, 25쪽

비누는 우리에게 얼마나 멋진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가! 그의 이마는 햇빛에 마르고, 어두워지고, 굳어지고, 주름지고, 갈라진다. 근심 때문에 금이 간다. 비누는 이렇게 비활성 상태로 잊혀져 있을 때 가장 잘 보존된다. 

– 〈1943년 6월 3일, 콜리니〉, 39쪽

“자연에는 비누와 견줄 만한 것이 없다. 그렇게 소박하면서도 멋진 돌은 없다. / 비누의 인격에는 진실로 매력적인 뭔가가 있다. 그의 태도는 흉내낼 수 없다. / 그것은 완벽한 조심성으로 시작된다. / 비누는 다소 은밀한 향을 풍기면서도 완벽한 자제를 보여준다. 그러다가 우리가 자기에게 관심을 두자마자, 물론 불같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대단한 격정을 보이는지! 얼마나 헌신적이고 미친듯한 열정인지! 얼마나 관대한지! 거의 고갈되지 않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다인지!” 

– 〈1943년 6월 9일, 콜리니〉, 47-49쪽

그가 망설이지 말고 항상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 좋겠다. 같은 방식으로 항상 같은 것을 말하면 좋겠다. 누구에게든 같은 방식으로, 물론 환희에 차서 같은 것을 말하면 좋겠다. 하지만 가장 멋진 것은 우리가 깨끗한 손으로 이 연습을 마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장 큰 교훈이다. 

– 〈1943년 7월 8일, 콜리니〉, 65쪽

더구나 물은 비누 때문에 매우 놀라 괴로워하며 톡톡히 대가를 치른다. 물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 흔적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양에 의존함으로써만, 말하자면 상당한 양의 증원군이 유입되어야만 물은 그것을 떨쳐 버릴 수 있다. 
이제 비누를 물에서 꺼내보자. 그리고 이 두 적수를 각각 살펴보자. 한쪽은 양이 상당히 감소하여 얇아졌다. 하지만 성질은 변하지 않았다. 괴로워하는 상당한 양의 물은 체면을 구겼다. 승자는 누구일까?

– 〈비누 주제〉, 105쪽 

여러분은 내가 예전의 글들 덕분에 획득한 신용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또 여러분은 이러한 예비 산책이 재미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이처럼 시를 시작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말할 것이다.
“왜 당신은 생생한 주제로 들어가서 진솔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예기치 않게 등장시켜 독자를 사로잡지 않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던가요? 친애하는 친구여, 당신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 〈1946년 8월 2일, 콜리니〉, 135쪽

나부끼는, 빙빙 도는, 소용돌이치는, 부푸는, 다시 떨어지는, 둘러싸는, 증식하는 너울의 발레, 스카프의 발레. 이것이 우리가 젊었을 때 로이 풀러의 발레에 붙였던 이름이다. 
망사 천의 발레, 거품의 발레, 기포의 발레, 분노와 황홀의 발레. 노여움의 발레, 환희의 발레, 눈꽃송이의 발레, 달변의 발레. 

– 〈1964년 12월 29일, 파리〉, 227쪽 

우리가 별생각 없이 평소에 사용하는 것들 중에는 ― 빵, 비누, 전기도 마찬가지이지만 ― 단어들과 언어의 수사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물건들의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진정한 제작자는 작가며 시인이라는 점이 명백해질 것이다. 

– 〈부록 4, 일반적으로 인간이 만든 사물들, 특히 어떤 열쇠들과 암호 해독판들〉, 247쪽

비비는 행위 그 자체를 보자면, 그것은 단순한 잡기의 반복과 배가가 아닐까? 예를 들어 애무가 완전한 효과를 내서 마침내 특정한 신경의 변화에 이르게 하기 위해 반복되고 지속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약간의 경련 혹은 오르가슴이다. 

– 〈부록 5, 손 비비기. – 뭔가로. – 쓰기와 읽기. – 대상기쁨의 도덕 입문. – 책의 끝.〉, 251쪽

지은이 | 프랑시스 퐁주

1899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의 유복한 개신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초반에 풍자시 몇 편을 쓰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초현실주의자들과 사회에 대한 저항 정신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그들과 달리 사물과 언어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길을 택한다. 첫 시집 《사물의 편》(1942)이 호평을 받으면서 문단에 이름을 알렸으며, 문단 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사십 대 이후에는 몇몇 사물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사색의 심화에 몰두한다. 그는 시를 ‘대상놀이(objeu)’로규정한다. 하나의 대상이 단어들 사이의 내적 연결과 조작 등의 놀이에 의해 표현될 때 그것은 새롭고 깊은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시는 대상(objet)과 주체 사이에 벌어지는 놀이(jeu)인 것이다. 그는 사물에 대한 시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함은 물론 우리의 행복에 기여하기를 바랐다. 《프로엠》(1948), 《물컵》(1949), 《표현의 광란》(1952), 《비누》(1967), 《풀밭의 제작》(1971), 《말의 무화과 어떻게 그리고 왜》(1977), 《테이블》(1982) 등의 작품이 있다.


옮긴이 | 이춘우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와 동 대학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3대학에서 프랑시스 퐁주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국가를 생각한다》(공저, 영한, 2017), 옮긴 책으로 김혜순의 《한 잔의 붉은 거울》을 불역한 Un Verre de miroir rouge(공역, Decrescenzo, 2016)가 있다. 논문으로 〈로랑 가스파르의 내재적 시학과 윤리〉, 〈기쁨의 윤리학–에피쿠로스주의자 퐁주〉, 〈프랑스 사진 은판술과 근대의 인간적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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