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송미경
  • 발행일 2024년 5월 3일
  • 판형 122×180mm
  • 면수 212쪽
  • 정가 17,000원
  • ISBN 9791193240359
  • 전자책 미출간

책 소개

기쁨 안에는 슬픔이 도사리고 있고,
슬픔 안에는 기쁨이 잔존해 있음을 알아버린
작은 어른들을 위한 슬프고 아름다운 환상극

《어떤 아이가》 《돌 씹어 먹는 아이》 송미경 작가의 첫 소설

송미경 작가의 첫 소설 《메리 소이 이야기》가 읻다의 한국 소설 첫 책으로 출간되었다. 2008년 등단 이후 동화와 청소년 소설, 그림책과 만화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하고 다채로운 시도를 이어왔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송미경 작가의 만화(《오늘의 개, 새》) 속에는 연애를 하는 개와 새가, 동화 속에는 못과 돌을 먹는 가족((《돌 씹어 먹는 아이》), 토끼 인형이 되어버린 소녀, 가방 속에 사는 아버지(《어떤 아이가》) 등등이 능청스럽게 등장한다. 이야기로 진입하는 문을 열어주는 기묘하고 비현실적인 소재들, 엉뚱하다기보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서 작게 비뚤어진 면을 발견하는 면밀한 시선, 천연스러운 대사들과 표정들, 그 수면 아래에서 역동하고 있는 마음을 포착하는 세심한 사유가 그의 소설에서도 여지없이 펼쳐진다. 무루 작가의 말처럼 “《메리 소이 이야기》는 그의 그림책이 그랬듯 쓸쓸하면서도 달콤한 꿈의 맛이 나고, 그의 만화가 그랬듯 허허실실 오가는 말 사이로 속이 쿡 찔리는 순간들이 있다.” 

명백히 웃을 만한 이야기인데도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그런 일들이 있다. 슬픔을 봉인한 채로 우스꽝스러워진 이야기들.

124쪽

《메리 소이 이야기》는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나(은수)’의 자전적 소설이다. ‘나’의 엄마는 어렸을 때 동생 ‘소이’와 단둘이 유원지로 놀러 갔다가 그곳 화장실에서 동생을 잃어버린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증발한 것처럼 사라진 동생을 기다리는 엄마의 사연은 제과 회사인 ‘미미제과’의 마케팅으로 전국에 알려진다. 미미제과는 딸기맛 웨하스에 얽힌 엄마와 소이의 추억을 소개해 창사 이래 최고의 매출을 올린 이후 딸기맛 웨하스 상자 겉면에 소이를 찾는 광고를 싣고, 급기야 ‘나’의 집을 웨하스 집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갖가지 사연을 가진 메리 소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한다. ‘나’의 애착 인형인 눈 깜빡이 인형 ‘미사엘’이 빗방울에 눈을 뜬 어느 날, 자신이 메리 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농담 같은 이름을 가진 ‘제리미니베리’가 웨하스 집의 문을 두드린다.

메리 소이를 기다리며 우리가 하는 것

《메리 소이 이야기》는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무런 꿈도 없이 인형을 돌보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나’, 끼니때마다 배달 음식을 시키고 쿠폰과 리뷰 이벤트에 열중하는 ‘제리미니베리’, 욕하거나 동정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사람들과 그들을 위한 드라마를 쉴 새 없이 써내는 ‘마로니’, 수상한 종교나 타인의 말을 덥석 믿고 따르는 ‘삼촌’, 그리고 왜인지 동생을 잃어버린 엄마보다 더 간절히, 묻고 싶은 것이 많은 표정으로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문 밖의 수많은 사람들까지.

그 인파 사이에서 ‘나’는 자기 자신을 “결핍이 뚜렷하지 않고 그래서 행동할 이유도 쏟아낼 대사도 없는 구경꾼 1” 정도로 느끼는데, 다행히도 구경꾼 1의 인생은 혼자가 아니다. ‘나’는 마로니와 아름답지만 쓸모없는 것을 사 모으며, 제리미니베리와 삼촌이 주고받는 엉뚱한 대화를 들으며 한 시절을 건너간다. 결국 《메리 소이 이야기》는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나’의 이야기다.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운명을 타고난 작은 ‘나’를 중심으로 재구성된 사람들의 생생한 기다림의 이야기.

작가는 견고하게 쌓인 슬픔 사이로 구원의 손길을 불쑥 내밀거나, 선과 악을 구획하는 대신 ‘나’의 시선으로 인물 각자가 지닌 기다림의 미추를 우리 앞에 하나씩 꺼내어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반복되는 오늘이 허무해지지 않도록 애쓰고, 먼 곳으로 떠나지 않고도 자신이 선 곳에서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질 것이다. 

나는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우리 모두 내일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아졌고 세상 어디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내가 이 땅에서 역할이 적은 배역을 하나 맡고 있고 그걸 잘 해내고 있는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면 내가 진짜 세상에 붙여진 작은 스티커 조각 같다는 느낌을 잠시나마 지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원본 세계에 붙은 콜라주된 작은 스티커 조각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차례

1장 | 메리 소이
2장 | 제리미니베리
3장 | 젤리, 캔디, 허니, 킬링
4장 | 아나무스 씨와 마로니
5장 | 무엇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원더마트
6장 | 드라마 작가와 삼촌
7장 | 삼촌과 제리미니베리
8장 | 마로니와 제리미니베리
9장 | 그리고 무조건 이모
10장 | 먼지 조각 같은 것들

작가의 말


책 속에서

빗방울이 미사엘의 눈꺼풀 위로 뚝 떨어졌다. 그러자 미사엘이 오랫동안 감고 있던 왼쪽 눈을 떴다. 빗방울이 미사엘의 왼쪽 눈동자 위로 뚝 떨어졌다. 그러자 미사엘이 왼쪽 눈을 다시 감으며 눈물을 흘렸다. 눈 깜빡이 인형은 울지 못한다.

9쪽

엄마가 공개한 사진 속엔 빨간 코트를 입고 하얀 베레모를 쓰고 입을 반쯤 벌리고 웃고 있는 메리 소이가 있었다. 눈썹이 짙고 동공이 뚜렷하며 볼이 발그레하고 이마는 봉긋했다. 소이 이모가 사람들에게 ‘메리 소이’로 불리게 된 건 바로 이 사진 때문이었다. 다섯 살의 소이 이모는 알전구가 반짝이는 트리의 ‘Merry Christmas’라는 금색 글자 앞에 서서 귀여운 얼굴로 ‘Christmas’를 가리고 있었다.

11쪽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건 너희 가족에겐 삶이었으나 타인에겐 일종의 놀이였던 거지. 원래 사람들은 주인공이 고생하는 이야기를 좋아해. 계속 더 고통받으며 기다리는 걸 보고 싶어 하고. 그러다가 결말에서 빵, 하고 한 번에 그걸 해결해 주면 더 좋아하고.

44쪽

나는 엄마가 파스타나 라면을 끓일 때면 제리미니베리를 생각했다. 제리미니베리는 언제나 면을 삶는 엄마 곁에 서서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넋이 나간 채 보고 있었다. 마치 마술쇼를 보는 듯한 황홀한 표정으로. 마치 누구도 자신을 위해 면을 삶아준 적이 없었다는 듯이, 때론 너무 고맙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듯이, 때론 어서 빨리 배를 채우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그러니까 일곱 살 아이처럼. 진짜 메리 소이처럼.

63-64쪽

온 세상 사람들이 마로니가 미쳤다고 말했지만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오직 마로니만 제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마로니는 제정신이기 때문에 이 이상한 세상에서 한결같이 이상한 걸 써내고 한결같이 최고의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거다.

176쪽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에게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185쪽

지은이 | 송미경

2008년부터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썼고 그림책과 만화책을 쓰고 그렸다. 《어떤 아이가》로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광인 수술 보고서》, 《돌 씹어 먹는 아이》, 《가정 통신문 소동》, 《오늘의 개, 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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