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년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다. 릴케의 어머니는 릴케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르네Rene라 짓고,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열한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이후 로베르트 무질의 첫 장편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의 배경이 되는 육군고등사관학교로 옮기나 결국 자퇴한다. 1895년 프라하대학에 입학하고서 1896년 뮌헨으로 대학을 옮기는데, 뮌헨에서 릴케는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 시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를 독일식 이름인 라이너로 바꿔 필명으로 사용한다. 1901년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만나 결혼한다. 1902년 파리에서 로댕을 만나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는다. 클라라와 헤어진 릴케는 로마에 머무르며 《말테의 수기》를 완성하였으며, 이후 1911년에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 후작 부인의 호의로 두이노 성에서 겨울을 보낸다. 이곳에서 바로 전 세계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릴케 만년의 대작이며 10년이 걸려 완성할 《두이노 비가》의 집필을 시작한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릴케는 스위스의 뮈조트 성에 머무는데, 이곳에서 그는 폴 발레리 등과 교유하며 여생을 보낸다. 발레리의 작품을 독어로 번역하고 또 직접 프랑스어로 시를 쓰던 시인은 1926년 백혈병으로 스위스의 발몽 요양소에서 죽는다.


로베르 데스노스(Robert Desnos)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초등교육만 이수하였으며, 학교를 자퇴한 후로는 독학하였다. 일찍부터 시인이 되고자 했으며 1922년부터 앙드레 브르통이 주도하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한다. 1929년에는 점차 정치색이 짙어지는 브르통과 결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거나 라디오 방송 작가로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나치 점령하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1944년에 게슈타포에 체포되고, 수용소를 전전하다 1945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서 티푸스로 사망한다.


루이-페르디낭 셀린(Louis-Ferdinand Céline)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알베르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와 더불어 현재까지도 꾸준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20세기 프랑스 작가 중 하나다.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당시 프랑스 문단에 큰 충격을 준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를 공공연히 표명한 탓에 2차세계대전 후에는 문단과 강단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기도 했다.
셀린은 1894년 5월 27일 파리 교외의 쿠르브부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루이-페르디낭 데투슈(Louis Ferdinand Destouches)이다. 1932년 어머니의 성에서 따온 셀린이란 필명으로 민족주의와 식민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는 소설 《밤 끝으로의 여행》을 발표한다. 이 소설로 르노도상을 수상한다. 1936년 자본주의를 공격한 두 번째 소설 《외상 죽음》을 발표하고 같은 해 러시아 여행을 다녀와 공산주의 체제를 낱낱이 비판한 《내 탓이오(Mea Culpa)》를 발표한다. 프랑스가 해방된 뒤 대독 부역자로 단죄를 받아 덴마크에서 감옥에 갇힌다. 형기를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와 집필을 계속하는데 이때 《Y 교수와의 대담》, 《이 선에서 저 선으로》 등을 발표한다. 자신이 마주한 모든 주의에 대해 비판을 이어나가던 셀린은 마지막 작품 《리고동》을 탈고하고 1961년 7월 1일 사망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철학자. 1차세계대전 참전 중에 《논리철학논고》를 집필하고, ‘철학의 모든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했음’을 선언한 뒤에 학계를 떠났다. 8년 후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평생 철학을 가르쳤으며, 《철학적 탐구》를 비롯한 많은 저작을 유고로 남겼다. 작품과 삶에서 드러나는 실존적 자세, 완벽주의, 독특한 성격으로 철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폭넓은 영향을 끼쳤으며, 20세기 이후 근대철학에 가장 강력한 흔적을 남긴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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